한 맺힌 이산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는 상봉의 기회를자주 마련하는 길밖에는 방도가 없다. 상봉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상봉 그체가 중요하다. 이 원칙에 충실했다면 이번 4차상봉도 벌써 이뤄졌을 것이다.. 서울, 평양 두 곳만을 상봉 장소로 정해 놓고 한 번은 서울에서 다음 번은 평양에서 하는 식으로 교환방문을 고집하는 것은 인도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것을 알게된다. 이런 방법은 「서울」과 「평양」을 체제 선전장으로 활용하려는 냉전적 대결의식의 산물로 비쳐질 뿐 이산가족들의 쓰라린 아픔을 어루만져 주려는 인간적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금강산이든 어디든 만날 수만 있다면 양쪽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
특히 북쪽은 아무런 전제 없이 시행돼야 할 인도주의적 사안을 마치 시혜를 베푸는 듯이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 때 북측은 세 차례 정도 실시해 보자고 제의한 적이 있어 이번 네번째 상봉은 북측이 베푼 가외의 소득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배려」도 가능한 한 더 많은 가족들이 만나게 해야 한다는 상식적 통념 앞에서는 무색해지고 만다. 남측 당국이 장소 문제를 양보한 만큼 북측도 상봉사업의 제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면회소 설치와 서신교환은 별부담 없이 즉시라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들이다.
금강산이나 도라산 역, 또는 동해선이나 경원선 연결지점 등에 면회소를 만들어 상봉도 하고 서신도 교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상봉은 당초 지난해 10월에 예정됐던 것이었지만 그동안 남북 사정으로 상봉의 기회가 미루어졌다. 그러나 이번 상봉을 보면서 우리는 남북 이산가족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더 많이, 더 빨리, 더 쉽게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앞으로 있을 남북 당국 간 접촉을 통해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더 접근이 있길 기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