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이산가족 상봉이 반 년만에 재개되었다.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상봉했던 종전 방식과는 달리 이번에는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850여명이 재회의 감격을 누렸다. 상봉 날짜가 늦춰지고 금강산으로 상봉장소가 정해지는 바람에 몇몇 사망자와 거동 불편자가 제외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상봉 역시 눈물의 바다였다.

 한 맺힌 이산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는 상봉의 기회를자주 마련하는 길밖에는 방도가 없다. 상봉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상봉 그체가 중요하다. 이 원칙에 충실했다면 이번 4차상봉도 벌써 이뤄졌을 것이다.. 서울, 평양 두 곳만을 상봉 장소로 정해 놓고 한 번은 서울에서 다음 번은 평양에서 하는 식으로 교환방문을 고집하는 것은 인도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것을 알게된다. 이런 방법은 「서울」과 「평양」을 체제 선전장으로 활용하려는 냉전적 대결의식의 산물로 비쳐질 뿐 이산가족들의 쓰라린 아픔을 어루만져 주려는 인간적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금강산이든 어디든 만날 수만 있다면 양쪽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

 특히 북쪽은 아무런 전제 없이 시행돼야 할 인도주의적 사안을 마치 시혜를 베푸는 듯이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 때 북측은 세 차례 정도 실시해 보자고 제의한 적이 있어 이번 네번째 상봉은 북측이 베푼 가외의 소득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배려」도 가능한 한 더 많은 가족들이 만나게 해야 한다는 상식적 통념 앞에서는 무색해지고 만다. 남측 당국이 장소 문제를 양보한 만큼 북측도 상봉사업의 제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면회소 설치와 서신교환은 별부담 없이 즉시라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들이다.

 금강산이나 도라산 역, 또는 동해선이나 경원선 연결지점 등에 면회소를 만들어 상봉도 하고 서신도 교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상봉은 당초 지난해 10월에 예정됐던 것이었지만 그동안 남북 사정으로 상봉의 기회가 미루어졌다. 그러나 이번 상봉을 보면서 우리는 남북 이산가족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더 많이, 더 빨리, 더 쉽게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앞으로 있을 남북 당국 간 접촉을 통해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더 접근이 있길 기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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