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30분에 일어납니다. 남들은 먼저 조간신문을 보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일어나자마자 바로 세면장으로 달려갑니다. 집사람이 주는 죽 한 그릇 먹은 뒤 6시30분까지 회사에 도착해 곧바로 일을 시작합니다"
 종업원 3만여명을 둔 국내 최대의 단일사업장이자 자동차업계의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이기도 한 현대자동차(주) 울산공장. 국가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 거대 사업장을 이끌어가는 전천수 생산·노무담당 사장(59)의 하루는 이른 새벽 이렇게 시작된다.
 저녁에도 마지막으로 사무실의 불을 끄는 사람은 전 사장이다. 9시께 퇴근해 집으로 가 잠자리에 들면 비로소 하루가 마감된다.
 전 사장은 지난 79년 당시 현대정공(주)에 과장으로 입사하면서 현대맨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입사 10년만에 이사로, 다시 10년만에 기아차 전무이사로, 다시 4년만에 현대차 생산·노무담당 사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그의 고속 행진 비결은 한마디로 "성실"과 "철저한 자기관리"다.
 "열심히 일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단 열심히 하더라도 시간을 때우는 방식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효율성을 얼마나 높이느냐가 중요합니다"
 일에 대한 전 사장의 태도는 지난해부터 겸임교수를 맡아온 울산대 강의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경영학부에서 올해는 "자기관리"를 주제로 강의를 하고있다.
 "이 사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맡은 역할을 다 할 때 비로소 움직입니다. 공짜는 없습니다. 한 만큼 분명히 대가를 받게 돼 있습니다. 그 대가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그것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항상 스스로를 하나의 상품으로 보고 자신의 가치를 올려야죠"
 전 사장의 철저한 경험에서 나온 이런 삶의 방식은 최근 매출, 생산품질 등에서의 높은 성과로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품질조사 기관인 JD파워사가 미국시장에 팔린 자동차들에 대해 품질조사를 실시한 결과 울산공장에서 만든 베르나가 동급차종 1위, 싼타페가 3위에 올랐다.
 "생산라인에서부터 미세한 불량이나 결함마저도 없애기 위해 애쓴 현장 직원들의 공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완성차 품질은 부품품질의 확보 없이는 달성되기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부품품질을 높이는데 심혈을 기울여 준 부품업체의 노력도 큰 밑거름이 됐습니다"
 이같은 고품질을 기반으로 현대차는 중국와 미국, 유럽 등 해외로 현지공장을 급속히 확대하면서 세계적인 메이커로 부상했다. 이런 추세에 대해 일부 울산시민들은 혹 현대차가 울산을 떠나지나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전 사장은 "걱정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울산공장은 현대차의 주력공장으로 언제까지나 건재할 것입니다. 울산지역은 숙련된 노동력, 튼실한 부품산업 기반, 해양을 통한 수출입 물류의 높은 접근성 등 많은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국내 자동차시장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수출지원기지로서 울산의 역할도 늘어날 것입니다"
 울산공장의 비중은 오히려 더 커질 것이라고 말하면서 대신 현지생산은 세계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불가피한 대세라고 전 사장은 강조했다.
 "점점 심화되는 관세장벽을 뛰어넘고 해외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지 않으면 해외시장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특히 중국의 경우 과거에는 관세장벽과 가격 경쟁력 등 때문에 사실상 수출이 전혀 이뤄지지 못했으나 최근 현지에 생산공장을 가동하면서 비로소 중국시장 공략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전 사장은 울산시민들에게 오히려 전 보다 더한 사랑을 주문했다.
 "현대차가 창업을 하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곳은 바로 이 곳 울산입니다. 현대차를 "국제적인 기업"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울산으로 봐서는 바로 "향토기업"입니다. 때문에 최고 경영진에서부터 울산에 대한 애정은 각별합니다"
 지난 78년부터 5년여 동안 과장으로 현대정공에서, 87년과 98년에는 1~2년간 이사로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전 사장은 이제 울산사람이나 다름없다.
 "78년 당시 현대정공에 있을 때 울산은 정말 삭막했습니다. 도무지 정이 안붙었습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 울산은 굉장히 많이 달라졌습니다. 산좋고 물좋고 고기집도 많고, 공기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울산을 정말 살기좋은 도시라고 생각하는 그는 그동안 지역민을 위해 크고작은 일들을 많이 해왔다. 특히 지난해 12월과 올 1월에는 "사회봉사활동주간"을 선언하고 수천명의 노인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함께 생활하며 마음을 주고받은 "더불어 사는 사회"가 그가 갖고 있는 울산의 미래모습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가슴 속에는 한편으로 시민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항상 서려있다.
 "울산시민들의 지대한 관심과 사랑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년간 노사분규가 반복된데 대해 죄송하고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노사문제에는 가장 기본적인 노력이 오히려 중요할 수도 있으며, 그런 점에서 저희 회사의 노사관계에는 많은 기회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노무관리", "생산관리", "지역사회 봉사"···초일류 거대사업장을 끌고가야 하는 전 사장은 때로는 많이 외롭다. CEO라면 모두 그러하겠지만 회사가 큰 만큼 외로움도 더하다.
 "내가 하는 하나하나가 회사의 손익과 연결되는 만큼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특히 외롭습니다. 또 나 보다는 회사, 더 나아가 사회에 기여한다는 생각을 다 함께 해줘야 하는데 그 기대치에 못미칠 때 책임감과 함께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 현장에서 이를 이해하지 못할 때는 정말 아쉽습니다"
 이처럼 항상 선봉에 서 있는 그에게는 개인적인 희생도 많이 따를 수밖에 없다.
 "현장을 열심히 걸어다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수단이었는데 이제 나이가 들면서 건강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주말에 아내와 경주 남산을 찾고 있습니다. 평소 집안일을 거의 모르고 생활해왔기 때문에 등산은 아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내조를 아끼지 않은 아내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일에 묻혀 살아온 전 사장은 자신에게 그렇듯 종업원들에게 엄격한 편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너그럽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고싶다고 전 사장은 털어놨다. 이재명기자 jmle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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