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언양으로 넘어가는 24호 국도의 초입에 있는 마을이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다. 굴화(屈火)는 굴아불(屈阿火)의 줄임말로 "굴아"는 내(川)의 흐름이 굽었다는 뜻이고 "불"은 성읍이나 도시를 뜻한다.
 즉 굴화는 "굽은 냇가의 나라"다. 삼한시대 진한에 "굴아불"이라는 성읍국가가 있었다는 기록에 따른다면 마을 주민들의 주장대로 울산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 될 것이다.
 굴화는 옛부터 울산과 경주 사이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로 역촌(驛村)으로 불렸으며 원(阮·여행자들의 편의시설)과 지금의 우체국과 같은 역할을 하는 우역(郵驛)도 들어서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
 10여년 전만해도 태화강을 끼고 농사를 짓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지만 근래에 택지가 조성되고 고층 아파트가 세워져 신주거지로 탈바꿈하면서 옛 농촌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다만 무거동 신복로터리에서 백천 방향으로 나 있는 좁은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논과 배·감 과수원이 이어진 시골 풍경을 그나마 느껴볼 수 있기 때문에 인근 무거동 주민들의 산책로로 인기가 높다.
 굴화정미소 옆 굴화노인회관 주변도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등 옛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이 모습도 올 연말이면 볼 수 없을 듯하다. 노인회관 뒤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계획으로 있기 때문이다.
 "개발이냐 보존이냐"라는 논의 이전에 주민들이 현실 속에서 맞닥뜨리는 경제적 소외감은 예상 외로 컸으며 주민 대다수는 빠른 시일 안에 개발을 원하고 있었다.
 굴화리는 은진 송씨 주부공파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2002년 편찬된 〈범서읍지〉의 기록에 따르면 굴화에는 은진·여산 송씨가 20여세대 살고 있는 송씨 집성촌이다.
 이 가운데 은진 송씨가 15세대로 가장 많이 살고 있으며 여산 송씨(5세대)와 김해 김씨(8세대), 진주 강씨(5세대), 경주 이씨(10세대) 등도 굴화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성씨다.
 굴화 은진 송씨의 어른인 송진용(70)씨는 "1960년만 해도 굴화에는 100여세대에 이르는 은진 송씨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기도 했다"고 말해, 도시화에 따른 인구 이동이 굴화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실감케 했다.
 은진 송씨의 굴화 입향조는 은진 송씨 시조 송대원(大原)의 16세손인 용징(龍徵)이다. 고향이 대전 대덕인 용징이 언제, 어떤 이유로 굴화에 정착하게 됐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진용씨에 따르면 우암 송시열의 손자되는 용징은 350여년 전 우암이 정쟁에 휘말려 귀향을 떠나게 되자 벼슬에 회의를 품고 고향을 떠나 굴화에 정착했다고 한다. 마을 앞 구영산성 인근에 입향조의 묘가 있다.
 굴화에 정착한 은진 송씨들은 그들의 재력과 학문으로 굴화와 구영동 원 주민들의 신망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입향조의 4세손인 환우(煥祐)는 군수품의 출납을 맡아보는 "군자감정"으로 재임시 구영동 "새못(구영제)"을 축조했다.
 이를 보답하는 뜻에서 구영동 사람들은 굴화의 은진 송씨 자손들이 새못 인근에 논을 사도 "신참주"를 면해주었다고 한다. 신참주는 논을 구입했을 때 마을 사람들에게 내는 술로 쌀이 귀한 시절에는 꽤 감당하기 힘든 신고식이었다.
 이후 입향조 용징의 5세손 민규(旻圭)가 "공조참의" 벼슬을 지냈으며, 6세손 병진(秉鎭)이 무과에, 7세손 상헌(祥憲)이 사마시에 합격하는 등 관직 진출이 활발해 주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현재 굴화에 거주하고 있는 은진 송씨 일가는 입향조의 10세손 진용(70), 태천(60), 양현(56), 태식(55), 11세손 한출(67), 태군(52), 정규(48), 정문(46), 정호(44), 12세손 성구(46), 성우(39), 민준(44), 광식(39), 성호(37), 성환(24)씨 등이다.
 진용씨는 울주군의회 전문위원을 역임했으며, 태천씨는 울산시 동구청 총무국장으로 재직중이다. 굴화정미소를 운영하고 있는 양현씨는 굴화리 이장으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노인회관을 찾아 노인들의 말벗이 돼준다.
 한출씨는 순박한 농촌 할아버지로 웃음이 넉넉했고, 태군씨는 신정1동사무소 공무원, 정규씨는 울산의 작은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다. 정문씨는 울주군의회 의원으로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이밖에 송병철 울산경제인협회 회장과 송태일 (주)울산종합건설기계 대표이사도 굴화 출신의 은진 송씨다. 입향조의 11세손 준형씨는 울산에서 병원(연세내과)을 운영하고 있다. 서대현기자 sdh@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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