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민족은 옛날부터 대체로 한 곳에 정착하며 농업을 영위해 왔다. 산지가 많고 평야가 적었지만 이런 지형적 조건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터를 일구었다. 산지를 등진 곳에 마을이 있고, 마을 앞에는 들이 있어 그 앞을 흐르는 작은 강의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는 것이 우리 터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처럼 향토는 우리 삶의 무대였기 때문에 곳곳에 독특한 이름이 지어져 불려 왔다. 이 이름들은 근엄한 어른들이 지은 고상한 이름보다는 여기서 부대끼며 살고 있는 서민들의 일상적인 정서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땅 이름에는 우리 산천의 형상이 살아 꿈틀거리고, 옛 사람의 생각이 스며들어 있다. 순수한 옛 말이 그대로 담겨있고, 옛 풍속이 살아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원초적인 역사"가 아니겠는가.
 우리 울산사람들도 길게는 수 천년, 수 백년을 이 땅에 정착해 살면서 살아왔다. 이 세월 동안 울산의 뫼(山)와 들(野)과 내(川)는 우리 삶의 터전이었고, 외적의 침입을 막아주는 든든한 성보(城堡)였다. 그러기에 우리 고장은 언제나 부모의 품속처럼 아늑하고 친근한 곳이다. 우리의 생활터전이며, 민족문화와 예술의 배경인 향토는 우리가 태어나고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하다가, 결국은 우리가 돌아갈 곳이다. 전통적인 생활양식이 깊은 우리 민족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유달리 향토애(鄕土愛)가 강하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가 진하다. 고향에는 익숙하고 친밀한 산천의 아름다움이 혈육의 정과 함께 어려 있다. 선영(先塋)이 모셔져 있고 또 그 분들과 얽힌 이야기들도 남겨져 있다. 고향은 우리의 창조적 힘을 기르는 원천적 공간이다. 그래서 더욱 지면을 통해서라도 고향산천의 모습과 이에 얽힌 사연을 말하고 가꿔보고 싶었다.
 비록 몸은 천리 머나먼 곳에 떠나있어도 몸속에는 언제나 어린 시절의 숨결이 스민 울산의 피가 살아 용솟음치며 흐르는 것을 느낀다. 연재하는 동안에도 멋과 해학이 가득한 우리 고장의 오랜 삶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지, 또 이 땅에 어우러지며 얽혀진 많은 아기자기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과연 제대로 표현해낼 수 있을지 늘 염려스러웠다.
 지면(紙面)을 허락한 경상일보가 지방지로서의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항상 품위를 잃지 않고 지역의 언로를 반듯이 세우며, 향토의 큰 버팀목으로서의 존재의미를 편만하게 펼치며 웅비하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자랑스럽고, 또 오랫동안 "땅이름 울산사랑"을 아껴주시고 많은 격려를 보내주신 애독자분들께도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언젠가 다시 지면으로 만나 뵐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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