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울산상공회의소가 마련한 신년인사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고원준 회장의 소개로 시장, 의장, 국회의원, 주요기관장, 언론사 대표 등 내빈들이 차례로 인사했고 참석자들은 박수를 보내 답했다.
 이런 자리에서의 내빈소개는 소개를 하는 사람도, 소개를 받는 사람도 유난히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특히 현직에 있지 않는 인사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참석자들의 보이지 않는 동의를 얻어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부담스럽다.
 이런 가운데 심완구 전 시장이 소개됐다. 심 시장은 약간 초췌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참석자들은 진심이 가득 담긴 큰 박수로 환영했다. 모든 정력을 쏟아 일했던 지난 8년간에 대해 감사를 나타내는 박수소리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박수를 받는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어른을 갖게 된 시민들도 가슴이 뿌듯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떠난 자리, 더구나 권력과 명예가 함께 있던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 박수를 받기는 쉽지 않다. 칭찬보다는 허물이 더 많은 것이 그동안 권력자들의 떠난 자리다.
 항로를 일러주는 어른
 이날의 일을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총선을 눈앞에 두고 "울산의 어른"에 대해 생각해야하지 않을까하는 마음 때문이다. 울산시장이 시정을 의논할 수 있고 울산의 발전을 위한 큰 그림을 그려줄 수 있는 경륜을 갖춘 어른이 있어야 긴 역사를 항해하는 울산시가 바른 항로를 쉽게 찾아갈 수 있다.
 그래도 지난 세월동안 울산은 나름대로 지역의 어른 역할을 하는 인물이 있었다. 그들이 울산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를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지자면 문제가 없진 않지만 큰일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어른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추종을 했던 어른이었음에는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 울산이 어른으로 모셔야 할 인물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심완구 전 시장은 물론이고 국회의원을 지냈고 행정경험과 기업경영 경험을 가진 박진구 전 울주군수나 고원준 상공회의소 회장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최근들어 총선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어른 역할에서 조금은 동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본인들이야 지역발전을 위해 정치에 참여한다고는 하지만 그 과정이 그렇게 흘러가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묵묵히 뒷자리를 지키면서 울산의 발전을 위해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하는가를 일러주는 어른으로 남아야 할 인물들이 총선을 앞두고 선두에 나서면서 오히려 이합집산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지역인심을 사납게 하고 민심을 나누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어른을 만드는 노력도 필요
 아울러 시민들도 어른이 없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어른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한 시점이다. 조금의 문제가 있더라도 어른으로 모시면 역할을 하게 된다. 또 어른을 미처 몰라보고 예를 갖추지 않는 것을 아닌지 주변도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앞서 말한 신년인사회에서도 지역 어른 한분을 제대로 모시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내내 가슴에 남아 있다. 울산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냈고 30여년간 울산문화원을 지낸 박영출 전 원장이다. 팔순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이날 인사회에 참석한 박 전 원장은 특유의 다정한 표정으로 뒷자리를 지키면서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더니 어느 순간 조용히 밖으로 나가고 없었다.
 이날 인사회에서 내빈들과 함께 그를 울산 역사의 한페이지에 반드시 기억돼야할 어른이라고 소개했더라면 우리는 또 한명의 어른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물론 그가 털어서 먼지 하나 안나는 올곧은 인물이라서가 아니라 적어도 울산을 위해 그가 뿌린 애정만큼은 인정을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jms@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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