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준 울산상의 회장이 "마침내" 정치권으로 돌아갔다. 1월29일 기자회견을 통해서이다. 열린우리당을 "컴백의 무대"로 택했다. 정식 입당식은 2월13일께 가질 예정이다. 입당할 때 "300~400명을 동반할 것"이라고 했다.
 올 초까지만 해도 고 회장은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정치인 고원준" 보다는 "경제인 고원준"으로 비춰지기를 희망했다. "정치참여설"이 나돌 때마다 "입당하지 않는다. 정치에 있어 완전히 논외로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던 그가 여권의 "총선 징발대열"에 전격 합류했다.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 등이 공을 들였다고 한다.
 고 회장은 자신의 입당에 대해 "(전적으로) 지역발전을 위해서"라고 했다.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노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역발전을 위해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많은 의석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자리나 지위에 연연하지 않겠다." 입당의 변치고는 일단은 색깔이 분명하다.
 문제는 총선에서의 그의 역할이다. 선대위원장을 맡는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송철호 지부장과 쌍두체제를 형성해 "총선을 주도한다"는 전략이다. 다른 쪽에서는 "고원준 특수효과"를 놓고 시끄럽다. "그의 영입이 과연 총선 대박으로 이어질 것이냐"가 논쟁의 핵심이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이래저래 피 말리는 상황 속에 있다.
 이쯤에서 따져 볼 것이 있다. 고 회장의 인생편력이다. 그는 1943년생이다. 이미 육순의 세계에 살고 있다. 욕망과 욕심을 비워가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다시 정치권으로 컴백했다. "올인(all-in) 정치시대"에 전부를 던지는 "올인 배팅식 정치권"으로 편입한 것이다.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솔직히 당혹스럽다.
 고 회장은 상공인이지만, 정치적 성향이 강한 쪽의 상공인이다. 그는 지역 상공인으로서 일찍부터 울산상의 등을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제4대 분과위원회 상역분과위원회 위원, 제5대 재정분과위원회 위원장, 제6대 징계분과위원회 위원 등을 거쳐 1997년 3월10일 제12대 회장에 선출됐다. 13, 14대 회장직을 계승하면서 오늘까지 울산상의를 이끌고 있다. (주)한주 대표도 겸하고 있다.
 고 회장의 정치권 진입은 1981년 3월 제11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에 당선되면서 시작됐다. 그의 나이 38세였다. 1995년 6월27일 제1회 기초단체장(울산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후 정치를 접고 "경제인 고원준"으로 살아 왔다. "정치권 복귀"의 기회가 두어 차례 있었으나 "불출마"로 정치 쪽을 차단했다.
 이런 고원준 회장이 정치권으로 컴백한 것은 사건이다. 더구나 입당에 따른 "패키지 선물"로 300~400명을 동반할 계획이다. 이두철, 이병우, 오동철, 구자운과 박진구, 김팔용 등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 이들 보다 더 거물급(?) 인사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물론 본인들로서는 아직은 수용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시중의 객담"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 중 몇 명을 동반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고 회장의 능력에 달려 있다. 분명한 것은 "성과여부"나 "총선 결과"가 그의 입지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총선 뒤의 "자리보장"이다. 짐작하건데 육십 줄에 접어들면서 그는 지역에서의 "위치"와 "대접받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듯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생전부"를 4월 총선에 배팅할 이유가 없다. 평생에 쌓아온 명예와 지분과 조직과 영향력을 전부 던지는 "올인식 정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그가 더 잘 알 것이다. "경제인 고원준"의 정치컴백이 "지역 발전을 위해서"라니 그 진실 여부를 총선을 통해 검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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