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존재감이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영화 〈자토이치(2003)〉의 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분명 여러 모습의 존재 혹은 존재 이유를 갖는 사람이다.
 그는 허허실실의 농담으로 이어지는 만담의 대가이자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매일 밤 일본의 TV 오락프로그램을 장식하던 사람이며 동시에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자 배우이다.
 그의 영화가 우리나라에 처음 개봉한 것은 베니스 영화제 수상작인 〈하나비(1997)〉였다. 아직도 그때의 처연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너무도 순식간에 불붙었다 사라져 버리는 "불꽃" 같은 폭력과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냐는 식의 능청맞음은 기타노식 영화의 징표가 되었다.
 영화 〈자토이치〉는 일본에서 1962년부터 26편의 시리즈영화로 만들어져 일본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내용이다. 기타노는 맹인이며, 도박의 명수이자 검술의 달인인 예전의 "자토이치"에서 저만큼 나아가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 낸다.
 기타노 다케시가 맡은 "자토이치"의 염색한 노란 머리는 시대극인 이 영화에서 처음부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한편의 즐거운 뮤지컬이다.
 칼을 휘두르고 피가 사방에 튀지만 이전의 기타노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피의 선연함과는 거리가 있는 그래픽 처리된 가짜 피 같은 느낌을 준다. 휘두르는 칼이 춤이 되고, 칼싸움을 마치고 돌아가는 빗속 농부들의 괭이질은 절묘한 박자가 돼 방금 전 화면위로 솟구친 것이 가짜 피라고 고백하듯 영화는 한없이 가벼운 유희의 시간을 제공한다.
 특히 영화의 전 출연진이 함께한 탭 댄스는 일본 전통신발인 "게다"를 활용한 재치있는 장면으로 기타노의 예술적 재능과 유희적 본능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검객영화와 뮤지컬이 만난다는 설정은 동양 아니면 불가능한 일다. 이제껏 우리는 예전의 "외팔이 시리즈" 같은 한·홍합작이나 중국무협영화,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 등 장르의 단일성만을 생각해 왔다.
 이제 기타노는 노란 머리를 한 주인공이 시대극에 나와 심각했던 검객 영화의 법칙을 버리거나 또는 칼을 버리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춘들 무슨 잘못이 있겠냐고 반문한다.
 사람들은 이미 영화에 관해 너무 많이 알고 있고 장르의 법칙도 줄줄 꾀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기타노 식의 "(골)때리기나 (상식)비틀기"를 새로운 유희로 즐기는 편이 나을 듯 하다. 영산대 영화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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