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들의 기세가 자못 등등하다. 2004 총선시민연대가 전현직 국회의원 66명을 1차 낙천운동 대상자로 발표한 데 이어 10일에는 2차로 낙천자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웬만한 TV토론 프로그램이면 예외없이 시민단체 대표들이 끼어 있고,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 감시나 다양한 입법과정에 있어서도 시민단체들의 적극적인 활동상이 자주 포착될 정도로 시민단체는 이제 익숙한 존재가 되어 있다.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시민들의 이해관계도 다양해지고, 그럴수록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의 과도한 정치화와 함께 시민단체가 과도하게 정치화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4년 전, 2000년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지금과 구성이 비슷한 총선시민연대가 낙천낙선운동을 벌였던 때가 생각난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낙천낙선운동에 대하여 옹호하였고 시민단체들은 선거유세현장에 까지 직접 나가서 전투적으로 낙선운동을 전개하여 대상 후보자 진영과 충돌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자들로부터 고소되어 낙천낙선운동을 벌였던 시민단체 지도자들이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여기서 케케묵은 4년 전 이야기를 들춰내는 것은 시민단체들의 정치참여를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함이다.
 민간(시민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압력을 행사하는 비영리집단으로서 시민단체는 다양한 분야에서 또한 다양한 성향의 인사들에 의하여 조직되고 활동한다. 때문에 그 각각의 정치성향은 서로 다를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인들과 정당 또한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들이 국민들의 위임도 없이 최종적 판단을 담은 명단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유권자인 국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또한 이번 낙천대상자 발표에 대하여 각 정파별로 서로 다른 판단이 나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선정기준 적용에 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다는 견해들이 많다. 부패·비리, 정치철새, 경선불복, 헌정파괴와 인권침해전력 등 선정기준의 내용을 보면 정당성이 있어 보이지만 그 적용에 있어서의 형평성은 실제로 문제가 있다. 부패·비리가 다른 의원들에게는 가혹하게 적용되지만 김근태 의원이나 정동영 의원의 경우는 적용되지 않았다던가, 한나라당에서 빠져나간 열린우리당 의원들 다섯 명이 철새정치인 대열에서 제외되었다던가, 정몽준 의원과 같이 경선 승복 이후 대선과정 중의 정치적 소신에 의한 결단까지도 낙천사유가 된 경우 등은 누가 보더라도 문제가 있다. 뿐만 아니라 분야별, 지역별로 시민·사회단체들이 경쟁적으로 공천반대 리스트, 지지후보 리스트 등을 남발하고 있어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또한 총선시민연대와는 성향이 다른 시민단체들도 낙천·낙선운동에 나설 것이 분명해 보여서, 이번 총선거가 매우 어지러울 전망이다. 새만금 개발과 관련하여 환경단체의 낙천운동 대상이 된 한 의원이 지역구에서는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니, 이 경우는 낙천운동이 당선운동이 되는 코메디가 되게 된다.
 2000년 낙천낙선운동의 불법판결에 의하여 시민단체들이 그 때보다는 덜 전투적일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생산적 시민정치참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총선시민연대가 보다 신중해 주기를 바란다. 선거법 상 낙천·낙선 및 당선운동은 모두 허용되지만 후보자 등록마감까지 현수막과 피켓 설치, 집회개최, 유인물 배포 등의 사전선거행위는 불법이라고 하니, 이러한 법적 한계를 지키고, 후보자들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유권자들의 몫으로 남겨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또한 2000년과는 달리 시민단체들마다 독자적 운동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 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옥 해야 할 것이다. 특히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전위대적 활동을 하고 있는 유사시민단체들에 대해서는 시민단체들 스스로가 논에서 피 뽑듯이 철저히 격리시켜 자신들의 중립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2000년에 총선시민연대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쓴 이후 필자가 겪었던 "홍위병들과의 전투"가 이번에는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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