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부산방면으로 난 7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울산예술고등학교를 지나면 울주군 웅촌면 오복리 삼거리가 나온다. 이 곳에서 왼쪽으로 난 길 따라 1.4㎞정도를 더 따라가면 울산시 문화재자료 3호인 "석천리 이씨고가"가 있는 웅촌면 석천리 석천(일명 돌내)마을이 나온다.
 석천리 이씨고가는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안채와 사랑채, 곳간, 사당 등 모두 13동에 66칸의 고가는 누가 보더라도 세도가의 집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집이다.
 약 240여년 전에 지어진 이씨고가는 학성이씨 서면파로 임란공신 겸익(謙益)의 고손인 의창(宜昌, 1725~1781)이 웅촌 대대리에 살다가 석천으로 옮겨오면서 새로 지은 집이다. 울주군 온양읍 남창리의 3.1운동을 주도한 재락(在洛)도 이 집에서 살았다.
 대대에 살던 이씨가 석천으로 오게 된 이야기는 "국풍(國風)"에 얽힌 전설과 함께 전해지고 있다. 어려움에 처한 유명 풍수가 국풍을 도와줬더니 현 이씨고가 터가 명당임을 알려줘 그가 알려주는 대로 집을 지은 것이 바로 이 집이다.
 이 마을 출신 이동호씨는 "마을이 마치 둥근 소쿠리처럼 산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마을 동산 동뫼는 소쿠리 안에 든 붕어모양으로 회야강 쪽으로 헤쳐나갈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씨고가는 붕어 꼬리 위치에 있지요. 힘이 모여있는 꼬리에 이씨가 터를 잡고, 붕어 머리부분 앞에는 연못을 파서 더이상 나가지 못하게 하는 형상"이라고 설명했다.
 의창의 둘째아들인 죽오공 근오(竹塢公 覲五)와 5세손 석진(錫縉)은 대과에 급제했고, 증손자 장찬(璋燦)과 4세손 규노(奎魯)와 규용(奎龍)이 진사를 지냈다.
 또 "근오 할아버지는 대과에 급제해 사헌부 지평을 지냈으나 낙향해 1792년 재천정(在川亭)을 건립해 후진을 양성했고, 장찬 할아버지는 시조인 예(藝)의 일대기와 문장을 모아 임신년에 개간한 책 "학파실기"의 목판 43판을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목판 43판은 현재 이휴정에 보관중이다.
 동호씨는 이처럼 유명 풍수가의 조언대로 붕어의 힘찬 꼬리질과 함께 집안에 벼슬을 지내는 인물이 배출되는 등 좋은 일이 계속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고 덧붙였다.
 묘사 이외에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 오전에는 시조인 예를 모시고 있는 석계서원에 모여 봉향하고, 음력 9월9일 시조 향사를 지낸다. 해방 직후까지만 해도 마을전체 80집 가운데 60집이 이씨문패를 달 정도로 집성을 이루고 살았으나 지금은 12집에 불과하다.
 전체 200여호까지 번창한 의창의 후손들은 울산, 서울, 부산 등 전국 각지로 흩어져 각 계층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석천마을 출신 가운데 정계에는 후락(81) 전 대통령 비서실장, 동석(56) 전 울산시의원, 복(64) 현 열린우리당 울주군 국회의원 경선후보와 고 윤락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이 있다.
 관계에는 거락(80) 전 경찰종합학교장, 설(74) 국가안보회의이사관, 정희(47) 울산시 사회복지과 노인복지담당 사무관과 고 동립 충남도 문교사회국장, 고 동윤 울산경찰서장, 고 탁 농수산부 부이사관, 고 동만 울산시 부시장이 있다.
 학계에는 동순(59·신라대학교 미술과 교수), 동덕(46·공학박사), 병호(57·경상대 건축공학과 교수), 수원(54·농학박사), 용환(46·서울대 전자공학과 교수), 강환(45·인제대 의대 교수), 관수(64·동의대 경제학과 교수), 동하(57·동의공업대학 사무국장)씨 등이 활동하고 있다.
 산업계에서 활동중인 식환(69·강남고속관광(주) 회장), 동호(62·태정개발 대표이사), 중걸(51·(주)우주전기 대표이사 )씨가 의창의 후손이다.
 금융계에는 일환(59·외환은행지점장), 동훈(57·제일화재보험(주) 회장)씨가 이 마을 출신이고 동권(63)씨가 전 부산은행 지점장을 지냈다. 의료계에는 동구(69·산부인과 의사), 태걸(48·외과의원장)이 있다. 경상일보 문화교육부장으로 있는 상환씨도 같은 갈래다.
 한편 석천마을 맞은편 도로변에는 석계서원(石溪書院) 복원이 한창 진행중이다. 1737년에 지어진 석계서원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됐다가 지난 2000년부터 복원을 시작, 오는 3월21일 복원기념식을 가질 예정이다. 석계서원 앞에는 반계 이양오(李養五·1737~1811년)의 문학비를 만날 수 있다. 반계 이양오는 석계서원에서 근오를 비롯해 후학지도에 힘써 문하에 많은 학자를 배출한 조선 영조 때 학자했다. 박은정기자 musou@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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