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서울로 과거를 보러갔던 선비들은 반드시 제천을 지나야 했다. "문경새재"를 넘든, "죽령"을 넘든 고개를 넘어서면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마을이 제천이다.
 제천하면 먼저 경상도 총각 박달과 제천 처녀 금봉이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는 "박달재"가 떠오른다. 하지만 어디 박달과 금봉의 사랑만 있었을까. 삐죽 솟은 제천의 산 구비구비 수많은 "남녀상열지사"가 겨울 된바람에 실려 애절하게 들려온다.
 이 애절한 이야기는 청풍문화재단지에도 있다. 충주댐이 만들어 지면서 수몰된 남한강 지역의 문화유산과 옛 가옥들을 옮겨 만든 이 문화재단지에는 수몰된 마을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문화재 하나하나 마다 묻어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어느 미술사학자의 말대로 제천은 알고 가면 더 즐길거리가 많은 고장이다. 그동안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고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우리나라 가장 내륙에 위치한 도시 제천에 한해를 준비하며 피곤했던 마음의 짐을 잠시 부려놓아도 좋겠다.
 #의림지
 의림지는 제천역에서 버스로 20여분 거리에 있다. 삼한시대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저수지로 제방을 옹기로 만들어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의림지의 명물은 2㎞의 제방을 둘러싸고 있는 수령 200년 이상의 노송과 공어(空魚)다.
 정광화 제천시청 홍보 계장은 "보통 제방에는 소나무가 자라지 않는데 유독 의림지에서 만큼은 소나무가 자라 세계적으로 희귀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며 "제방을 옹기로 막아 물이 새지 않는 탓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겨울이 돼 의림지 전체가 얼면 정월대보름날에 맞춰 "공어축제"가 시작된다. 공어는 속이 보일만큼 투명해 "빌 공"자를 붙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빙어와 유사하지만 크기가 조금 작다. 해빙되기 전까지 얼음을 뚫고 공어를 낚아 올리는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박달재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을 가로지는 험한 산이 박달재다. 과거를 보러 서울에 간 박달을 그리워한 금봉이가 상사병으로 죽고, 과거에 낙방한 박달도 금봉의 죽음에 목놓아 울다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울었오 소리쳤오 이 가슴이 터지도록" 작곡가 반야월은 박달과 금봉의 전설을 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에 남겼다.
 하지만 잔뜩 기대를 하고 박달재를 찾은 관광객 중 열에 아홉은 그 초라함에 실망하고 만다. 박달재노래비와 박달과 금봉의 동상이 세워진 작은 공원이 전부. 스피커에서는 "울고 넘는 박달재"만이 소리를 달리해 계속 흘러나온다.
 공원 앞 작은 동굴 안에 있는 옹달샘의 물맛을 보고, 노골적으로 성을 표현한 장승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박달재휴양림에 일박해도 좋지만 무박 2일의 여정은 너무 짧다.
 #청풍문화재단지
 박달재를 넘어 남쪽으로 차를 달리면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크다는 충주호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수몰민의 애환이 물안개처럼 자욱한 곳이지만 풍경은 아름답다.
 제천시는 수몰지역의 문화재를 보존하고 마을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1985년 청풍문화재단지를 개장했다. 이곳에는 "한벽루"와 "석조여래입상" 보물 2점과 지방유형문화재 9점 등이 아기자기한 초가마을과 함께 자리를 잡고 있다.
 KBS 드라마 〈왕건〉과 〈무인시대〉 SBS 드라마 〈대망〉의 촬영지로 더욱 유명하며 매년 4월 중순께 충주호를 둘러싸고 있는 벚꽃이 만개할 즈음 열리는 벚꽃축제도 볼만하다.
 충주호의 명물 유람선은 때를 잘 맞춰야 탈 수 있다. 5~8월 우기에는 서울의 홍수 피해를 대비, 충주호의 물을 빼기 때문에 유람선이 운행하지 않으며 겨울에는 얼음이 얼어 유람선이 다닐 수 없다. 유람선은 우기가 지난 9~11월 운행한다.(관광안내 제천시청 홍보과 043·640·5086) 서대현기자 sdh@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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