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 생활비가 가장 많이 드는 달, 5월이다. 먹고사는 데 드는 돈보다 사람노릇 하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간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해서 챙길 사람이 많으니 지출도 많다. 부모노릇, 자식노릇, 학부모노릇 제대로 하기 참 힘들다.

 이 중에서 가장 힘든 게 부모노릇 아닐까 싶다. 자식들 어릴 때야 아무 것도 아니지만, 출가시킨 후 부모 노릇이 진짜 어렵지 싶다. 부모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자식들은 커가면서 생각이 달라지고 남의 식구가 들어오면 집안 분위기도 달라진다.

 아들 넷을 둔 8순의 노모가 산동네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네 아들이 모두 인근 아파트나 근교에 살고 있지만 아무도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고, 매월 당번을 정해 어머니에게 반찬을 갖다드리고 있다. 그것도 아내 몰래 살짝" 아들들은 퇴근 후 짬을 내서 반찬을 사다 나르고 청소를 해드리고, 집에는 야근한다고 거짓말을 한단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보기에 딱해서 큰아들에게 물었더니, "우리 어머니가 아들만 좋아라 하시고 며느리는 다 밉다네요. 지금도 자꾸 이혼하라고 하세요. 까탈스럽고 괴팍한 시어머니를 어떤 며느리가 모시려고 하겠어요? 물론 어머니가 치매를 앓으면서 제 정신이 아니니까 그렇겠지만" 요즘 여자들이 그런 거 이해하려고 해요?"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낫지 절대로 어머니는 모시지 못한다는 며느리들 때문에 아들들은 돈을 거두어 전세금을 마련했고, 한달에 한번씩 돌아가며 어머니 반찬당번까지 정했다. 아들 입장에서는 어머니 편을 들기도 아내 편을 들기도 곤란하단다. 그래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자신들이 희생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남편노릇도, 자식노릇도 정말 힘들겠다.

 내 막내동생은 2대 독자다. 늦게 결혼해서 맞벌이 하느라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큰딸인 나는 친정에 갈 때마다 늘 안쓰러웠다. 7순의 어머니가 젖먹이 손주들 돌보면서 살림을 사시는데 얼마나 힘드신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주무셨다. 내 눈에는 동생 내외가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기보다 부려먹고 사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조카들이 유치원 다닐 무렵이 되자 올케는 분가하겠다고 나섰다. 이제 더 이상 아이를 맡기지 않아도 되니까 나가서 살겠다는 거였다. 남동생이 끝내 반대했더니 기어코 혼자 짐을 싸들고 나가버렸다. 남편이 뒤따라 나오겠지 하는 계산을 했던가 보다. 부모님은 아무 말씀없이 아이들을 거두며 아들의 처신을 지켜보았다. 동생 입장이 얼마나 난처했을까? 자식의 도리를 다하자니 아내가 울고, 남편의 도리를 다하자니 부모가 울고.

 직장 근처에 방을 얻어놓고 지내던 올케는 몇 달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부모를 버리고(?) 저를 찾아올 줄 알았는데 끄떡도 않으니 제풀에 지쳐 들어온 것이다. 그날 이후 동생네 집에는 평화가 계속되고 있다. 적어도 겉으로는"

 남편 입장과 자식 입장, 그 사이에서 갈등했을 동생을 보며 이 땅의 남자들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사회에서야 아버지의 말 한마디가 지상 명령이었지만 핵가족화 이후 어른들 말씀이 종이호랑이에 불과하지 않은가. 부모보다 아내의 말 한 마디가 무서운 세태가 되었으니 말이다. 갈수록 부모 노릇이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계절의 여왕 5월이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 이유는 부모자식 노릇에 갈등하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기 때문일까. 어버이날 의무방어전 치르듯이 부모님께 다녀오면서 저마다의 머리 속에 각기 다른 계산들이 오가는 걸 생각하면 서글프다.

 우리나라는 대학교까지 16년의 정규교육을 거치면서 왜 자식 노릇 부모 노릇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지 모르겠다. 많이 배운 사람이 더 많이 이해하고 베풀고 양보하라고 가르쳤으면 좋겠다. 그게 가르쳐서 될 일이냐고 반문하겠지만, 교육의 근본이 "사람 노릇 제대로 하라"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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