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나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혁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밸런스가 유지되지 않는 혁신은 오히려 혼돈만 초래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제일이고, 내 입장만 중요하다고 하면 한쪽으로 치우쳐 될일도 안되죠. 현재와 미래, 노(조)·경(영) 모든 것이 밸런스가 유지될 때 건강한 발전이 가능합니다."
 평사원으로 LG정보통신에 입사한 이후 한·일합작사의 최고경영자(CEO)의 위치에까지 오른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 LG-Nikko동제련(주) 이범순 사장(57).
 이 사장은 여느 CEO들처럼 경영에 있어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혁신의 근간엔 항상 밸런스(균형)를 유지해야 한다는게 지론이자 철학이다. 이런 밸런스 중시 경영은 한때 강성으로 불리던 노조와의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노·경 상호간의 신뢰와 배려는 국내에서 따라올 회사가 없을 겁니다. 노조는 회사를 믿고 열심히 밀어주고 회사는 노조의 입장에서 경영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신뢰가 형성되었죠."
 현재 노조와의 관계를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확신하는 이 사장은 자신의 확신을 한가지 에피소드로 간단히 입증했다.
 "지난해 임·단협때 회사안을 노조측에 통보하고 서울에 업무차 가 있었습니다. 전화로 확인하니 한번에 원안대로 임·단협이 타결됐다는 거예요. 믿기지 않아 3번이나 더 물어봤습니다. 너무나 고마운 마음에 성과장려금 30%를 즉각 지급했죠. 노조에서 임단협이 타결되자마자 성과장려금을 주는 회사는 우리 회사밖에 없을 것이라고 어이없어 하더군요."
 성장한 만큼 분배한다는 공식과 상호신뢰가 자연스럽게 성립돼 있는 셈이다. 종업원들에 대한 이 사장의 신뢰는 IMF 이후 계속된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욱 두터워졌다.
 "IMF로 대변되는 경영악화로 구조조정이 참 많이 됐죠. (국가나 기업 모두)경영을 잘못해 직원들을 떠나 보내게 된 것 아닙니까. 살면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노·경간, 종업원간 불신이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죠. 이런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해준 종업원들이 너무 고맙습니다."
 이러한 노사간 신뢰의 원동력은 이 사장의 사람중시 철학과 "물이론"에서 잘 묻어난다. 물은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형체가 없는 물은 상대방이 어떤 그릇(개성)이든 문제없이 담겨진다. 그러니까 변화(혁신)를 막무가내로 강요하다 보면 저항과 혼돈이 생기게 되지만 물처럼 스스로 동화된 상태에서 변화를 유도하면 자연스럽게 변화를 이루어낸다는 논리다.
 "직장이나 사회나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곳인 만큼 상대방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본인에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한 마음은 사회구성원이 가져야할 기본입니다. 내 것이 귀하면 남의 것도 귀하죠. 서로가 배려하는 속에 경쟁력 있는 직장(사회)이 됩니다."
 그는 자기가 희생해 약간의 손해만 보면 된다는 생각이 습관이 돼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별로 받지 않는다. 그래도 일년에 한번 정도 아내와 함께 하는 여행을 하면서 삶의 활력을 찾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엄격해서 자신과 한 약속은 대부분 지켜온 이 사장이 아직도 지키지 못한 약속 하나를 진행 중에 있다고 털어놓는다. "죽기 전에 우리나라를 국민 1인당 소득 2만달러 시대로 만들어 놓겠다"는 약속이다. 그가 이런 약속을 스스로에게 한 것은 30년전 독일 파견근무를 할 때다.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550달러였고 독일은 6천달러였습니다. 독일인들에게 코리아란 나라가 중국과 일본의 중간에 있는 나라라고 설명해야 겨우 알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질문하는게 우리나라에 "버스가 있느냐", "맥주는 있느냐" 등등의 질문만 하는 거예요.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던지요. 그래서 약속했죠. 제 자식(후배)들은 이런 서러움을 맞보지 않도록 2만달러 소득시대를 만들어 놓겠다고 말이죠."
 실제 그는 LG전자 정보통신부장으로 근무하던 지난 1983년 국내에서 최초로 자동화기술실을 만들어 이곳에서 배출된 150여명의 인력이 LCD와 반도체 등의 핵심인력으로 성장, 경제성장의 주역이 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2만달러 달성은 기업인들이 할 일입니다. 우리나라 경제인들은 강합니다. 정치·사회가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고 분위기(여건)만 맞춰지면 2만달러 달성은 반드시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는 최근의 원자재난과 관련, "차이나쇼크"에 대한 뚜렷한 해법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경쟁력만 가진다면 비전은 항상 있다고 강조한다.
 "사장 취임 이후 가장 큰 성과는 직원들에게 동제련이 사양산업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켰다는 겁니다. 동제련산업이 영원하다는 미래(자신감)를 갖게됐고 이러한 자신감이 경영실적 개선으로 나타났습니다. 1등에게 미래는 항상 존재한다는 확신이 선 것입니다."
 이제 그는 울산에 있는 기업으로서의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도 폭넓게 관심을 쏟고 있다. 그래서 최근 사택부지를 지역 모초등학교 부지로 저렴하게 매각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무의 하나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모 기업체가 조성한 울산대공원처럼 지역민들에게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지역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또 그렇게 할 것입니다. 기업이라는게 고객, 주주, 종업원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역(주민)과 함께 해야 합니다." 글 신형욱기자 shin 사진 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이범순 사장 프로필
△1947년 인천 출생
△1966년 재물포고 졸업
△1974년 인하대 기계공학과 졸업, LG정보통신 입사
△1983년 LG정보통신 자동화기술실 부장
△1990년 LG그룹 회장실 이사
△1997년 LG전선(주) 전무
△2001년 LG전선(주) 부사장
△2003년~현재 LG-Nikko동제련 공동대표이사 사장
△취미:테니스, 골프, 바둑
△애창곡:"누이"
△주량 및 흡연량:소주 반병에 1갑 반
△가족관계:부인 정영숙 여사(51)와 2남
 
 〈LG-Nikko동제련은 어떤 회사〉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 대정리 온산공장이 본사인 LG-Nikko동제련은 온산 및 장항공장에서 세계적인 품질의 전기동을 비롯한 화성 및 귀금속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1976년 가동에 들어간 온산공장은 하나의 공장안에 두 가지의 공법을 동시에 보유한 세계 유일의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제련 기술능력을 극대화, 세계 동제련 기술을 이끌어 가고 있다.
 제련기술연구소는 공정개선, 신공정 개발, 환경개선 등의 현장밀착형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 곳에선 아노드를 생산하는 제련공장을 비롯해 전기동을 생산하는 전련공장, 귀금속공장, 화성공장(황산 등 생산) 등이 있다.
 지난 1936년 용광로에 불씨가 붙여지면서 우리나라 비철제련산업의 토대를 마련한 충남 장항공장은 전련공장과 황산니켈공장이 가동중이다.
 이 회사는 지난 99년 LG금속과 Japan Korea Joint Smelting(J.K.J.S)의 합작사로 재출발했으며, 현재는 제련산업 부문의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기업간 전자상거래 부문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기술확보로 또 한차례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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