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봉 사회부 차장

울산 울주군의회가 2021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확정을 다음 회기로 넘겼다. 앞서 군의회 예산결산위원회는 행정복지위원회 소관 예산만 심사하고 경제건설위 소관 예산은 심사 없이 가능한 예산을 모두 삭감해 본회의에 수정안으로 상정했다. 예결위가 수정 추경안을 상정할 때 본회의 과정에서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됐는데 차기 임시회 재회부라는 예상 밖의 결론이 도출됐다.

이번 추경안 확정 불발의 발단은 경건위의 추경 미반영 사업 관련 자료 제출 요구였다. 경건위는 어떤 사업이 우선순위에서 누락됐는지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집행부는 관련 자료 제출 요구는 예산 편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만약 자료를 제출할 경우 해당 지역이나 민원인의 반발이 극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선호 군수는 물론 부군수까지 나서 제출 거부에 대한 당위성을 강조하는 등 이례적으로 강경 기조를 보였다. 집행부와 의회의 주장이 모두 설득력이 있지만 여론은 대체적으로 집행부에 기울고 있다. 실제로 군의회의 자료 제출 요구에 타 지자체 의회까지 관심을 보이는 등 집행부의 우려가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경건위 예산 심의가 파행되고 예결위의 첫날 계수조정 역시 무산되면서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한 한 의원은 “돌아가려고 해도 너무 멀리 왔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의원은 당초 자료 제출을 요구했을 때 집행부가 제출 거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었다면 사안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당시 집행부는 법률 자문 결과 제출 의무가 없는 자료라는 등의 원론적인 내용만을 담은 공문을 보냈다.

예결위의 수정 추경안 표결을 앞두고 이번 사안을 여야 문제로 인식하는 시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사건의 본질은 의원의 자료 요청을 집행부가 거부한 것이며 그 과정에서 보여준 집행부의 비협조적이고 고압적인 자세는 의회에 대한 집행부의 대응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결국 추경안은 찬반 투표 끝에 6월14일 열리는 204회 정례회에서 처리하게 됐다. 조례안은 처리했지만 추경안은 손도 못 대고 한 달 이상 시간만 날리게 된 셈이다. 급하게 예산을 소진하면 반납해야 하는 국비는 없을 수도 있지만 시급한 예산 투입에 지장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잘잘못을 떠나 집행부와 의회의 갈등으로 민생에 문제를 끼쳤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예산 편성은 집행부의 역할이며, 심사하는 것은 의회의 권한이다. 두 기관이 서로의 주장만을 내세우며 협치하지 못할 경우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이번 추경안 처리 불발사태가 잘 보여줬다. 예결위 수정 추경안 표결을 앞두고 나온 한 행복위 소속 의원의 발언으로 글을 맺는다. “예산을 심의하는 것은 의원들의 본분이다. 집행부에서 군민 혈세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군민의 행복이 결정된다. 의원들의 기본적 의무 중 하나가 예산 심의를 면밀히 해서 군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 의원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게 생각한다. 집행부와 의회가 한마음이 돼 서로 도와가며 군민을 바라보고 가야하는데 안타까운 면이 많다. 앞으로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의원들은 의원의 본분을, 집행부는 집행부의 본분을 다해 군민을 위해 나아갔으면 한다.” 이춘봉 사회부 차장 bong@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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