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환 박사 학술세미나 개최
‘제월당실기’ 일부 허구 주장
조상의 업적 미화 후대의 기록
사료로서의 가치 없다고 판단

이명훈 교수·이정호 원장 등 반박
일부 오류 가능성 인정하지만
지역사 인용 긍정적 시각 요구
민감 사안 처음으로 다뤄 주목

30억원 이상의 예산으로 울산 북구가 추진한 ‘기박산성 의병 역사테마파크 조성사업’이 사업 완료 몇 개월을 앞두고 역사적 사실 여부에 대한 논란에 휩싸였다. 한 지역사 연구자가 기박산성 사업을 주도한 북구의 사업안과 이에 도움을 준 조성사업 추진자문단의 역사적 근거를 공개 석상에서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기박산성 의병 역사테마파크 조성사업’은 북구의 기박산성 일원이 임진왜란 당시 전국 최초의 의병 결전지이자 최초의 승병이 일어난 곳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 그 일대(북구 매곡동 기령공원 8640㎡ 부지)에 의병 이야기길, 의병체험장, 호국광장, 관광안내소 등을 조성하는 내용이다. 이에 국비와 시·구비 32억원이 투입됐다. 사업 완료 시점은 올연말이다.

하지만 송수환(전 울산광역시사편찬위원·울산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박사는 기박산성임란의병추모사업회가 7일 북구청에서 마련한 학술세미나에서 관련 사업의 근거가 된 <제월당실기>의 내용 일부가 허구라고 주장했다.

<제월당실기>는 제월당 이경연(1565~1643)의 사후 266년이 지난 1909년 그의 후손이 엮었다. 임란 초기 1592년 4월21일 이경연 등 7명이 우선 회동, 4월23일 10명이 부서 편성, 4월24일 기박산성에서 열진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후 5월7일에는 박진남, 류정 등 인근 지역 의병과 연합해 병영성을 공격, 왜군을 격살한 뒤 군수품을 노획해 산성으로 귀환했다고 했다.

자문단 및 추모사업회는 이 내용을 근거로 울산이 임란 당시 전국 최초의 의병일 가능성을 주장한 바 있다. 그동안 한국사에서는 홍의장군 곽재우가 4월22일 의령에서 일으킨 의병을 임란 최초의 의병으로 인식해 왔다.

하지만 송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이 책은 제월당이 남긴 대부분의 기록물이 화재로 소실되고 손수 쓴 몇 편만 남은 상황에서 조상의 업적을 높이고자 그의 후손이 남긴 책일 뿐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하는 사료로서의 가치는 없다고 했다.

송 박사는 <제월당실기> 5월23일 소모문을 근거로, 이미 4월에 의병을 일으켰다고 한 이경연의 활동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 내용이 있다고 했다. 제월당은 학봉 김공(김성일)의 초유문을 보고 적변이 일어났음을 알았다고 했는데, <고대일록>에 따르면 김공이 초유문을 쓴 날은 5월8일이다. 초유문을 쓴 날보다 어떻게 결진이 먼저 일 수 있느냐는 반문이다. 또 경주 등 인근 지역과 연합해 5월7일 병영성을 공격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제월당실기>에 함께 참전한 것으로 기록된 박진남은 당시 운문산에 머무는 중이었고, 또다른 동참 의병장 류정 역시 그가 남긴 유집(송호유집) 어디에도 관련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병영성 공격이라는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기박산성 결진, 경주의병 합류, 병영성 공격, 신흥사 지운의 승병 및 군량미 300석 확보 등에 관한 기록 모두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에서 임란의병추모사업회 연구위원인 이명훈 고려대 명예교수는 “정사 중 정사라고 하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오류는 있다. 날짜 오류는 제월당 활동 시기가 난중임을 감안해야 한다. 또 기박산성 의병이 전국 최초의 의병이라고 주장한 바는 없다. 단지 ‘홍의장군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는데, 울산 의병은 그 보다 하루 앞선 것으로 기록돼 있다’고만 했다”고 했다.

플로어의 의견도 나뉘었다. 이정호 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은 “<제월당실기>가 퍼즐처럼 딱딱 맞아떨어지진 않는다. ‘삼국지’에 나온 이야기도 다 사실이라 할 수는 없지 않나. 다만 <제월당실기>는 우리 울산 최초의 일록이고 지난 100년 동안 지역사에서 인용돼 왔다. 좀 더 긍정적 입장에서 기박산성 문제를 봐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박중훈 북구향토사연구소장은 “의문을 제기하지 못해 연구조차 되지 못한 부분이 공론화 됐다는데 오늘 세미나의 의미가 있다. 최초의 의병 관련해서는 <송호유집> 사례를 들겠다. <송호유집>에는 의병장 류정이 (곽재우의 4월22일, 제월당의 4월21일 보다 빠른)4월19일 거병했다고 돼 있다. 개인의 유집을 역사고증사료로 활용하는 문제를 고민하자”고 했다.

이날 세미나는 참석자가 2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행사였지만 울산지역 유력 가문들의 관심은 집중됐다. 기박산성 의병과 관련한 16명 의사 중 신흥사 지운 스님을 제외한 15명 모두가 이미 충의사에 배향된 울산의 인물이다. 그들 후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동안 지역사 연구에서 단 한 번도 제기된 바 없는 민감한 사안을 공개적으로 다뤘다는데 의의가 있다.

한편 송 박사는 “20년 전 고향에 내려와 지역사를 연구해 왔다. 그런데 기박산성 문제를 들여다보니 울산의 명문 가문 등 여러 가문의 의병 후손들이 관련돼 있어 상당히 힘겨웠다. 그동안 공부한 바를 공유하고자 한 것인데, 혹시 잘못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질책을 해 달라”고 말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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