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통해 다양성 알게된다면
극단보다 보편타당한 사고 가능
사회 품격 높여 상생할 수 있길

▲ 김학선 UN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미래차연구소장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생물학적 관점에서도 세포부터 시작해 구성요소가 셀 수 없이 많다. 정신적인 관점으로 보면 구분조차 힘들 정도의 스펙트럼이 있다. 진보와 보수로 가르는 것부터가 매우 부정확하며 그 기준도 각양 각색이다.

젊음과 늙음을 구분하는 연령이 얼마일까? 육체적인 면에서의 노인과 정신적인 면에서의 노인이 과연 일치할까? 있지도 않은 기준에 몰입되어 휩쓸리는 현상을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편견이 사실과 다르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색상에서는 서로 반대편에 있는 색을 보색이라고 한다. 보색은 서로 같은 크기를 더하면 무채색이 된다. 그러나 함께 있으면 대비가 되어 훨씬 선명하게 보인다. 즉 하나 하나를 따로 볼 때와 옆에 놓고 볼 때와 합할 때의 색이 모두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보색을 서로 교차하여 빠르게 점멸을 하면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킬 수 있어서 연출상 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칼라공학적인 보색(멘셀의 20색상)과 에발트 헤빙이 주장하는 심리적인 보색이 다르다는 것이다. 빨간색의 보색은 멘셀의 이론에 의하면 청록색이나 헤빙의 심리학적 보색은 초록이라는 것이다. 이는 하드웨어적인 이론과 소프트웨어적인 심리에서의 차이도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세세한 부분까지 알 수는 없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식을 습득하는데, 가장 쉬운 것이 언론을 통한 정보의 취득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도 그래서 틀린 말이다. 성선설도 성악설도 틀린 말이다. 사람은 시간과 공간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으므로 다양성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성품도 자라온 환경에 따라 다르게 형성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보색이론을 현실에 대입해 보자. 진보와 보수는 서로 반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므로 곁에 두고 보면 서로 극명한 차이를 낸다. 그런데 둘을 합하면 무색이 된다. 즉 중도가 만들어진다는 논리를 가질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구성원의 성숙도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집과 아집으로 뭉친 그룹이라면 아수라장이 되도록 싸워도 중도로 수렴되지 않고 끝없는 다툼만 할 것이고, 이성을 가지고 합리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면 의견이 수렴되어 양쪽의 의견 중 합리적인 것으로 화합하는 모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갈등을 포용하는 능력은 성품에 크게 의존한다. 구성원의 성향이나 성격은 바꾸지 않더라도 성품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현실과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을 통해 전체를 보는 시스템적 사고, 넓은 시야, 관점의 다양화 등의 서로 다른 다양성을 알게 되면 극단보다는 보편타당한 사고를 할 수 있다.

요즈음에 세대 간의 갈등, 혹은 세대교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경험이 많은 사람과 경험이 적은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이 없다 경험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똑같은 문제가 다른 시기에 발생하면 해결 방법도 달라야 한다.

농경사회에서의 문제 해결법과 산업사회의 해결법이 다르고 지금과 같은 지식정보사회에서의 해결법은 더욱 다르다.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에서는 체험적이고 통계적인 경험이 중요하지만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지식과 창의력, 상상력 등이 포함된 디지털 능력(Digital Literacy)이 중요하다. 그러나 경험과 디지털 능력은 서로 도와주는 관계이지 갈등의 요소가 아니다. 인터넷이 발달된 요즈음에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에게는 젊은이들이 더 경험이 많으므로 도와주면 된다. 창의력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통계적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면 서로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다. 세대 간의 갈등보다는 서로 포용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 방법이다.

흰색을 한참 보다가 빨강을 보면 녹색이 섞여 보이고 녹색을 보면 빨강이 섞여 보인다. 우리의 눈에 보색 잔상이 있는 것은 흰색으로 회귀하고 싶은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높은 품격을 갖추어 어울리고 통합되어 상식적인 사회에서 상생하는 시대가 되면 좋겠다.

김학선 UN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미래차연구소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