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대표적 시동인 "변방"이 동인지 제17집 〈나는 아직도 만년필로 편지를 쓴다〉(도서출판 종)를 펴냈다.

 이번 시집에는 강세화 문영 박종해 신춘희 이충호씨 5명만 참가했다.

 박종해 시인이 내놓은 10편의 시 가운데서 따온 〈나는 아직도 "〉라는 시집 제목에는 서문을 통해 밝히고 있는 "문학 외적인 요소들이 문학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왜 시이고, 시인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자 한다"는 변방동인의 "참다운" 문학을 향한 의지가 담겨 있다.

 "나는 아직도 만년필로 편지를 쓴다./ 나의 편지 속에는/ 푸른 정맥을 타고/ 그리운 사연들이/ 강물이 되어 흘러 나온다./" 한 시대 뒤에서 느린 걸음으로/ 나는 쉬엄쉬엄 걷고 있지만/ 맑은 실개천 맑은 바람/ 푸른 숲이 나와 함께 있다./ 모두 버리고 간 고향이/ 나의 만년필 속에 살아 있다."(박종해 시인의 〈나는 아직도〉 전문)

 강세화 시인은 여전히 잔잔하면서도 직설적이고 따뜻하면서도 쓸쓸한 서정성을 이끌어가는 16편의 시를 실었다. "물물이 갑갑한 심정을 무슨 재주로 이겨내나/ 충동을 저지르고 도리어 마음이 성치 않으니/ 바라건대 이담에 내 뜻대로 생겨날 수 있다면/ 오로지 혈관 싱싱한 장미로 살았으면 좋겠다"(〈薔薇〉 전문〉

 문영 시인은 부조리한 세상사에서 비켜서지 않으려는 고집을 부리면서도 왜소한 시민의 따뜻한 심상을 놓치지 않는 12편의 시를 발표했다. "소금이/ 바다를 밟고 가던 날/ 어둠에 갇힌 몸에서 빛이 튀어 나왔고/ 불타는 물이 그를 받아 주었다"(〈소금의 날〉 일부)

 신춘희시인은 대상을 직관적으로 바라보며 주관적인 묘사를 통해 시적 언어를 획득하고 있는 13편의 시를 실었다. "영혼이 어디론가 떠나버리자/ 육체의 빈집만 풀섶에 남겨졌다/ 공허해진 그 집의 추녀 밑으로/ 벌레들이 수없이 드나들고/ "/ 각질의 기둥으로 남았을 때/ 빈집은, 땅으로 가/ 흙의 일부가 되기 위해/ 주저앉았다/(〈달팽이의 집〉 일부)

 이충호시인은 〈구룡포〉 연작시 6편으로 통해 세상을 읽고 있다. "무엇이 그리워 그리워/ 뜨거웠던 애련의 옷자락 바람 속에 날리며/ 바다는 불붙어 있었을까/ 자책으로 슬픔으로/ 스스로를 유폐시켜 파도는 붉게 붉게/ 울고 있었을까" (〈구룡포 25-노을, 바다의 편지〉 일부)

 변방동인이 결성돼 첫 시집을 낸 지 만 20년이 됐다. 81년 12월에 결성돼 다음해 4월에 1집을 묶은 뒤로 84, 86, 88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한권씩 꾸준히 묶었다. 예전 구성원들 가운데 이미 홍수진씨가 타계했고 2명의 동인은 이번에 작품을 내지 않았다. 정명숙기자 jms@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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