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믹스 앤드 매치
여백의 美 중시, 단순함 추구
오래된 것의 가치 소중히 여겨
새로운 삶의 트렌드로 각광
동적인 서양 스타일과 만나면
감각적인 공간으로 변신 가능

▲ 고요한 여백 속에 자연과 본질을 담아낸, 와비사비 철학이 느껴지는 공간들.

텅 비어있는 오래 된 공간, 소리의 진동이 느껴질 것 같은 여백의 고요함, 그속에 개인의 사유와 철학을 담아낼 수 있다면….

이런 공간을 원하는 이들이 특히 주목하는 인테리어 디자인이 있다. ‘와비-사비’(わび-さび) 스타일이다. 와비사비를 온전히 이해시키기 위해 그 어원과 진화 과정을 몇줄 더 언급해야겠다.

와비사비는 일본어다. 와비(わび·侘)와 사비(さび·寂)는 서로 다른 개념이지만, 묶어서 와비사비라고 한다. 영어에서는 일어 원음을 그대로 가져 와 ‘wabi-sabi’로 표기한다. 와비는 단순하며 본질적인 것을, 사비는 오래되고 낡은 것을 뜻한다. 훌륭한 상태에 대한 열등한 상태를 의미하지만, 좀 더 명확하게는 ‘부족한 듯 하지만 그 내면의 깊이가 충만함’을 나타낸다. 불완전함의 미학을 나타내는 일본의 전통 미의식, 또는 미적 관념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 고요한 여백 속에 자연과 본질을 담아낸, 와비사비 철학이 느껴지는 공간들.
▲ 고요한 여백 속에 자연과 본질을 담아낸, 와비사비 철학이 느껴지는 공간들.

이 말을 공간 개념으로 해석하면 ‘물질적 풍요에 집착하지 않으며,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의 본질적인 삶을 추구하는 공간’으로 풀이된다. 한 마디로 소박함과 단순함(와비) 그러면서 내면의 아름다움(사비)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와비사비의 출발은 일본 다도(茶道)의 대가 센노리큐(1522~1591)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차(茶)문화에 대한 그의 인식은 모자람이 있는 듯한 곳에서 한적한 정취, 여유와 풍성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아늑한 목조 구조물에 모티브만 덜렁 남은 분위기 같지만 그 모티브의 조화는 일체감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 고요한 여백 속에 자연과 본질을 담아낸, 와비사비 철학이 느껴지는 공간들.
▲ 고요한 여백 속에 자연과 본질을 담아낸, 와비사비 철학이 느껴지는 공간들.

격자로 된 문 사이로 아련한 대나무 소재의 세이드가 미스터리하게 연출된다. 그 사이에 스며드는 햇살은 평화로움 그 자체다. 투박한 화병에는 들꽃 한 두 송만으로도 충분하다. 창밖의 공기를 느끼며 차향을 음미할 수 있는 센토리큐의 다도방을 상상해 보라.

와비사비에 대해 설명이 장황해진 이유는 새로운 삶의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와비사비는 우선 자연스럽다. 여백의 미를 중시하며 단순함을 추구한다. 차분하고 오래된 것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다. 따라서 굳이 필요 없는 것을 공간 안에 들이지 않는다. 생활용품이나 가구는 재활용하거나 고쳐 쓰면서 삶의 안정감과 만족감을 찾으려 한다.

▲ 고요한 여백 속에 자연과 본질을 담아낸, 와비사비 철학이 느껴지는 공간들.
▲ 고요한 여백 속에 자연과 본질을 담아낸, 와비사비 철학이 느껴지는 공간들.

동서양의 조합을 절묘하게 매치한 공간은 단순한 인테리어 작업이라기 보다 창조적 ‘예술’ 영역에 더 가깝다. 동적 모티브가 많은 유럽 및 서양의 스타일이 정적인 동양의 선과 연결되면 한층 더 ‘감각적’ 공간이 완성된다.

▲ 최애린 공간디자인전문 레드게이트 대표
▲ 최애린 공간디자인전문 레드게이트 대표

이같은 스타일의 대가 중에 엑셀 보르보르트(벨기에)가 있다. 그의 프로젝트는 공간 속으로 외부의 자연이 깃들게 한다. 결코 만만하지 않은 환경적 분위기를 부담스럽지 않도록 실내로 들여놓는 내공을 느낄 수 있다. 화려한 일본식 스크린(병풍)은 금박으로 화려한 배경을 자랑한다. 푸른 소나무 위에 흰눈을 뿌려놓은 풍경화, 그 앞에 단순한 라인으로 마감한 콘솔(긴 탁자), 그 위에 어느 선비가에서나 볼 수 있는 백자도자기에 매화가 꽂혀있다. 이처럼 창의적인 콘셉트 위에 기능성과 효율성을 두루 만족시키는 가구를 차례차례 배열한다. 자연컬러로 편안함을 느끼게하는 긴 소파, 황금색 프레임으로 된 테크 패턴의 사이드 체어, 넓고 투박한 커피 테이블, 그 앞에는 어느 고성(古城))의 일부 같은 벽난로 등.

여백은 더 이상 공허하게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 이상의 가치로 채워진, 말 그대로 ‘텅 빈 충만’의 실체가 느껴지지 않는가.

최애린 공간디자인전문 레드게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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