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국산품 사용 미덕이던 시대서
개인 취향 반영한 소비로 패턴 변화
환경 등 고려 가치소비가 표준될듯

▲ 정연우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최근 들렀던 복고콘셉트의 음식점 벽지에 오래된 신문광고들이 붙어있었는데 눈에 띈 한 지면. “1993년 대우전자가 탱크주의를 선언합니다”. 당시 전면적으로 공세를 폈던 냉장고, TV, 세탁기광고였는데, 탱크처럼 단단하게 제품을 설계하고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제품의 품질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냉장고 윗쪽 도어 가운데 큼지막하게 ‘[TANK]’라 쓰인 금속배지가 붙어있었던 모습이 기억난다. 지금은 엘지전자가 된 금성전자의 광고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였다. 제품의 수명이 10년은 되니까, 구입할 때 잘 선택하라는 의미다. 참 오래전이다. 그때는 절약이 마치 대한민국 전 국민의 필수덕목 같았다. “아껴쓰고 저축하자”는 표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적게쓰기, 아껴야 잘 산다는 말은 당시 군사-권위주의 정권 치하의 반공에 맞먹는 국시였다. 지출보다 수익이 높아야, 건전하고 잘사는 가계경제였다. 국가 재정도 수출이 수입을 앞지르는 무역수지흑자가 목표였던 시절이었다. 국산품을 장려했고, 수입품을 사용하는 것은 ‘사치’ ‘매국’ 프레임을 씌웠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 매주 아이들의 필통을 열어서, 외제 문구류, 주로 일제 문구류를 쓰고 있는지 검사했다. 오래 가는 것, 튼튼한 것이 좋은 제품이라면서 샤프심부터 가전제품, 자동차까지 거의 모든 외산품 품질이 더 좋았음에도 국산품 쓰라 장려했던 아이러니. 돌이켜보면 흑자를 열망하는 대한민국의 눈물나는 모습이었다. 물질이 중요했던, 일종의 하드웨어 중심시대였다. 한 제품을 다수가 우르르 소비하며 ‘유행’이라는 동류의식을 가진 시기이기도 했다.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기 보다, 어떤 레벨이면 이런 제품을 쓴다는 대중 인식이 통용되었다.

현재는 ‘풍족하게 쓰기’가 미덕인 시대가 되었다. 상류층이 재화를 쌓아두지 않고 소비를 해야 경제가 돈다는 낙수효과가 대체로 받아들여진다. 소비를 더 크게 확장시키면서 부담을 더는 새로운 금융방식이 나타났다. 이제는 거의 모든 제품이나 서비스에 할부, 리스가 가능하고, 대출을 받아 금융투자를 한다. 미술품이나 고가기호품을 공동으로 구매하고 지분율로 소유권을 행사하는 조각구매까지 등장했다. 제품선택과 구매에서도 과거처럼 제조국적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가 어디인가’가 가치를 결정짓는데 더 크게 작용한다. 즉 디자인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Made in(메이드인)’에서 ‘Designed by(디자인드바이)’로 바뀌었다. 우리가 쓰는 애플 아이폰은 메이드인 차이나라고 쓰지 않고, 디자인드 바이 애플, 캘리포니아 라고 쓴다. 물질에서 정신으로의 변화다. 소프트웨어중심 시대가 되었다.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은 상향평준화되었기 때문에, 취향이 중요해졌고 디테일이 생겨났다.

미래의 소비는 어떻게 바뀔까? 최근 일어나고 있는 변화 패턴을 보면 예측해볼 수 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소프트웨어중심으로의 변화 중에서, 두드러진 취향이 발견되고 있다. 가치소비다. 착한 소비가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다는 지점이다. 내가 소비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지구의 영속성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친환경적인지, 노동착취가 아닌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지불하고 만들어졌는지, 공정 무역을 통한 것인지 등이 소비 선택의 기준이다.

언젠가부터 내가 산 물건의 생산과정과 탄소발자국을 생각해보게 되었고, 제품폐기와 재활용, 재사용 여부나 성분이 중요해졌다. FREITAG(프라이탁)이라는 업사이클 가방 브랜드의 성장세를 보면 가치소비가 미래의 중요축이 될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잔도 공정무역이나 정당노동 인증이 있는지 드러나게 되었다는 점 부터도. 다소 우스꽝스럽지만 종이빨대 사용, 재사용 장바구니, 개인 텀블러 등은 우리가 얼마나 미래에 ‘선한 소비’의 가치를 둘 것인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와 테슬라의 약진은 먼 미래같던 전기차 시대를 현실로 만들어버렸다. 볼보의 슬로건 ‘볼보 포 라이프 (Volvo for life)’는 감히 자동차 기업의 그것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가치확장적이다. 좋다는 말이다. 오래되었지만, 필립스의 광고에 등장하는 문장은 여전히 참 예쁘다. 미래를 예견한 것일까. “렛츠 메이크 팅스 베터 (Let’s make things better)”.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자.

정연우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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