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 스스로 선택할 권리
죽음 눈앞에 둔 당사자가 가져야
연명의료결정제 도움될 수 있어

▲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

벨기에의 휠체어 스프린터 마리케 베르보토는 10대 때부터 난치성 척추질환을 앓기 시작했고 점점 증상이 심해져 20살에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에 그치지 않고 간질 발작과 지속되는 통증으로 고통이 점점 심해졌지만 베르보토는 휠체어 레이싱, 즉 비장애인에게는 육상 달리기에 해당하는 운동에 매진해 국가대표로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2016년 리우 대회에선 은메달을 획득했다.

2016년 리우 대회 때, 그녀가 대회가 끝난 후 자국에서 합법인 안락사를 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며칠 전 패럴림픽 소식들을 보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찾아본 그녀의 그 이후 이야기는 이렇다.

베르보토는 리우 대회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후 운동을 그만둔다. 당시 그녀가 대회가 끝나자마자 안락사를 할 것이라는 기사가 있었는데 그건 타블로이드에서 과장해 뿌린 뉴스로, 언젠가 그럴 예정이지만 당장은 아니라고 본인이 정정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19년 10월, 베르보토는 스스로 정한 날짜에 안락사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0세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의 죽음은 슬픈 일이 분명하지만 당사자에겐 그렇지만은 않아보였다는 것이다. 단순히 운동을 그만둔 후 몸상태가 점점 나빠져 그 고통에 무너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녀가 안락사 서류에 서명한 시기는 오히려 운동선수로 활약하기 한참 전인 2008년이다. 진통제 등 약물치료를 계속하면서도 어떻게 선수생활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이 운동이 내게는 일종의 처방이라고 밝게 답했다 한다. 물론 질환으로 인한 통증이 아니었으면 선택이 달랐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통증보다도 스스로의 인생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자유가 없는 것이 가장 힘들었고,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오히려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줬다고 한다. 선택한 날이 오기 한주 전에 조촐하게 파티를 열었고, 장례식을 미리 준비해놨는데 축하의 자리가 되길 바란다면서 추도사는 일부러 코미디언에게 맡겼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후 집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베르보토에 대한 기억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긴 했지만, 병원에 근무하다보면 간혹 이런 주제에 대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나라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적어도 의료계 쪽에선 논의대상으로 떠오른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사실 죽음이라는 게 쉽사리 말을 꺼내기도, 또 함부로 말하기도 어려운 주제이긴 하다. 게다가 베르보토의 일화는 어디까지나 해당인의 선택일뿐, 자칫하면 장애와 아픔에도 생에 대한 의지를 갖고 멋지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다른 장애인들에 대한 오해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하고 싶은 한가지는, 그녀처럼 안락사는 아니더라도 현재 의학적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투병 중인게확인된다면 치료를 하느냐 아니냐, 어디서 마지막을 맞이할 것인가를 선택할 권리는 당사자에게 있어야 하지 않겠나는 것이다.

그에 관련된 제도가 201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연명의료결정제도다. 19세 이상인 자가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이 본인에게 내려진다면 스스로 판단하여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미리 서명하는 것이 골자다. 우리나라는 임종시의 장소가 병원의 중환자실, 응급실인 비율이 비슷한 수준의 국가에 비해 많이 높은 걸로 안다. 평소 마지막에 대한 논의가 특별히 없었던 경우도 많고, 의학적으로 가망이 없는 상태라도 유족이든 의료진이든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 대해 어떤 가치판단적 이야기를 하긴 힘들지만, 다른 장소와 다른 상황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는 선택이 적어도 고려대상이 되는 건 나쁜게 아니다. 병원에 근무하다 보면 의료진이 아님에도 어쩔 수 없이 마지막에 관련된 이런 저런 일들을 접한다. 그에 비추어 볼 때, 모든 사람들은 아니어도 일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도라고 본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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