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하고 특화된 똑똑함 영역 있어
자신·타인 감정 이해하는 훈련 필요
감정지능 높을수록 대인관계 잘해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가 똑똑함을 이야기할 때는 주로 IQ를 떠올립니다. 집중력과 기억력을 이용해서 특정 패턴을 익히면 이것을 학습이라고 합니다. ‘파블로프의 개’는 이것을 통해 종소리가 울리면 음식을 얻는다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 정보를 더 쉽게 전달하고, 이를 종합하여 계획하고 결정합니다. 언어, 숫자, 도형으로 구성된 시험지를 통해 이런 인지기능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이를 IQ라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IQ가 높은 사람이 돈도 잘 벌고, 사회에 잘 적응해서 범죄율도 낮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험지 풀이 능력’ 외에도 다양한 ‘똑똑함’의 영역이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숫자나 작문에 특화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몸을 잘 쓰는 사람, 음악에 뛰어난 사람, 공간과 방향에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똑똑함에 있어 공통 요소도 있지만 각 분야에 특화된 요소도 있다는 것이죠. 이중에 유명한 것이 감정지능(EQ)인 것 같습니다. EQ는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잘 인식하고 조절하여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대인관계도 잘 하고, 자신 혹은 타인에게 동기부여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EQ를 이야기할 때 리더십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녀의 EQ를 높여서 더 성공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솟아납니다. 그런데 IQ와 달리 측정이 어렵습니다. 지능은 학습의 결과물인 시험으로 수치화가 가능하지만 감정에 대한 능력은 면접, 추천서, 평판 등을 통해 추정하는 것이 그나마 가능한 방법입니다.

감정은 쾌, 불쾌의 2가지 방향과 강함, 약함의 2가지 방향으로 크게 구분되지만 기쁨, 슬픔, 공포와 같은 기본적인 감정부터 한국인의 ‘정’과 같은 오묘한 감정들까지 다양합니다. 이 느낌을 잘 알고, 이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로 인한 충동을 잘 다루는지, 대인관계에서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알아야 감정을 잘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신과를 찾을 때는 치매나 ADHD처럼 기억력, 집중력의 IQ와 밀접한 인지기능이 주요 원인인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주로 감정의 어려움으로, 혹은 그 결과로 생긴 집중력 저하, 피로 등으로 찾게 됩니다. 커다란 슬픔, 불안을 안고 오더라도 감정을 잘 알고 함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할 수 있는 환자는 상대적으로 빨리 회복하는 편입니다. 증상의 크기는 작더라도 무언가 갑갑하고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찾아왔는데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부터 어려워하는 사람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의사가 여기저기 누르면 아프냐고 묻는데 잘 모르겠다는 답만 반복하는 상황과 비슷할 것입니다.

현재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더라도 이해하는 깊이가 다를 수 있습니다. 숫자에 대한 이해로 바꿔보면 2의 2제곱, 3제곱은 어렵지 않지만 20제곱이 백만보다 큰 수인지 금방 아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반대로 2제곱, 3제곱도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만나는 수학, 과학에 능한 학생, 교직원도 감정에 대한 능력은 초급부터 고급까지 다양합니다. 지적장애와 같은 심각한 뇌질환의 경우에는 기본적인 자신의 감정 파악도 어렵겠지요.

증상이 심하지 않아 상담선생님과 먼저 시작했는데 진전이 없어 제게 다시 의뢰되는 경우 약물치료를 함께 하기도 합니다. 자신도 잘 모르던 불안과 긴장이 완화되면서 감정을 더 잘 이해하고 해소하기도 합니다. 약도 큰 효과가 없을 때는 과거의 경험들을 더 탐색해봅니다. 지금 우울증이 심해서 과거를 더 나쁘게 보는 경우도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감정이 억압되어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적어도 어릴 때는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성취감을 느끼고, 잘 안되면 아쉬워할 때 격려를 받은 기억이 있어야 합니다. 좋았던 감정이 있어야 불쾌한 감정과 비교도 해보고, 동기부여를 스스로 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감정에 대한 이해나 대화도 없이 수치화된 결과만 강요받으며 억압되었던 학생들은 시험지보다 더 복잡한 현실사회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현실에서는 시험문제처럼 해결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대학원만 하더라도 실험실에서 아직 교과서로 정리되지 않은 지식들과 씨름하며 새로운 발견을 할 때는 불안, 외로움, 질투심 등을 다뤄야 합니다. 타인과 정보도 공유하고 격려도 받아야 합니다. 내가 동료, 친구, 배우자에게 서운하거나 화가 날 때, 이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떤 느낌인지,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차이가 납니다.

내가 집에서 감정 훈련을 잘 받지 못했다면 부모님 또한 비슷한 양육을 받았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내가 배울 수 있는 대상은 친구나 선생님도 있습니다. 책이나 영화의 인물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사회가 가난할 때는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했겠지만 현대에서는 그 이상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내가 더 잘 살기 위해 나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훈련을 시작해보면 좋겠습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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