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났다. 과거에 비하면 부정선거의 논란도 없었고, 돈을 많이 쓴다거나 세를 모아 과시한다거나 하는 선거도 되지 않았다. 그 자체로 큰 성공이다. 생각보다는 빨리 고비용의 정치와 이로 인한 부패한 정치자금이 없어질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제 우리도 자유롭고 선진적인 민주선거문화를 가지게 되었다고 자부해도 될 법하다.
한 가지 아쉽다면 지역주의의 극복은 아직 더 많은 시간을 요하는 것 같다. 선거 막판에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선거 전략도 공공연했고, 나타난 결과도 영호남의 쏠림현상은 뚜렷하다. 정당의 구성원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지역기반은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현재의 상황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그 쏠림현상이 너무 강하다.
지역주의에 관한 한 울산시민들 만큼은 자랑스럽다. 울산 만큼 "황금분할"이 제대로 된 지역은 없다. 한나라당 3명, 열린우리당 1명, 민주노동당 1명, 국민통합21 1명에 현역 3명, 신인 3명으로 균형을 이뤘고 보수 4명, 개혁 1명, 진보 1명 등으로 분류되는 것도 확실한 황금분할이라 할 것이다.
어쨌든 이번 총선의 민의는 국회 권력지도를 많이 바꾸어 놓았다. 지난 1988년 이후 16년 만에 여대야소 국회를 구성, 집권당 주도의 정국 운영을 가능케 만들었다. 44년 만에 처음으로 진보정당(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하는 기록을 낳았다. 17대국회 당선자의 4분의 3 가량은 기존의 의원이 아닌 신진으로 채워졌다. 특히 당선자 중 50대 이하가 80%를 넘는 등 세대교체도 급속히 진행됐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행정권력과 동시에 의회권력까지 차지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국정 전반을 주도적으로 이끌게 됐다. 특히 과거 집권당이 보수층을 기반으로 한 데 비해, 이번의 여대야소는 집권당이 개혁세력 및 진보층 일부를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국가운영 및 사회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집권세력이 마음만 먹으면 개혁 드라이브를 강화해 각종 개혁입법을 통과시키고, 잘못된 국가적 관행들도 상당 부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도 선거 전 여론조사 등과 비교할 때 높은 지지를 받았다. 거대여당을 견제해야 한다는 설득이 먹혀들었던 것이다. 과반을 차지한 집권당의 전횡을 견제하면서 건전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 게으름이 없어야 할 것이다. 무책임한 정쟁만을 위한 야당이어서는 안 된다.
한편 또 하나의 야당인 민주노동당도 전국에서 높으면서도 고른 지지를 받았다. 민노당 당선자들은 이전의 국회의원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부자들에게 돈 받지 않고 진성당원 5만명의 당비로만 정치하겠다, 부자들에게 세금 제대로 걷어 서민들에게 복지를 돌려주겠다, 자신이 받는 의원 세비조차 노동자 평균 임금을 빼고는 당에 반납하겠다고 한다. 민노당이 보여줄 새로운 모습도 기대가 된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일반국민들은 정치권에 가장 먼저 경제살리기를 주문하고 있다. 경기불황문제, 청년실업문제, 신용불량자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지금 당장이라도 머리를 싸매고 그 해답을 찾아나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치권 전부가 이번의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제대로 받들어, 과거의 이전투구와 부패로 얼룩진 정치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정치야 말로 생산적인 정책대결과 국민화합의 장임을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출발의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