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의 애착 통해 배운 대인관계
안정적인 결혼생활 유지 위한 바탕
이해·존중으로 더 나은 관계 형성을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연애경험이 많지 않은 남자가 오랜 노력 끝에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짧은 연애 후 결혼했는데 전업주부인 아내가 자신에게 애정표현을 하지 않고 집안일을 과도하게 떠넘기며 경제적으로도 불평등한 상태에 놓이는 상황을 묘사한 이야기, 일명 ‘퐁퐁단과 설거지론’이 인터넷을 통해 유행했습니다. 과학적으로 적립된 이론이 아니기 때문에 여성의 결혼 전 연애경험 등 다른 요소에 대해 다양한 논박이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혼인관계에서 남편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입니다.

나이든 재력가와 젊고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 결혼하는 이야기는 흔하고 오래된 이야기인데 어쩌다 유행이 되었을까요. 남녀가 대립하고 혐오하는 사회갈등으로 해석하는 것도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백만장자와 금발모델 보다는 우리의 주변에서 마주칠 수 있는 인물들이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자신의 상황도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지만 가끔 불공정하다는 느낌이 든 적이 있어 공감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그 숫자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남성이든 여성이든 대인관계에 미숙한 상태에서 착취당하는 관계에 놓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중·남고와 공대를 나와 번듯한 직장을 다니며 상당한 경제적 기여를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전형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니더라도 낭비가 심하거나 상의 없이 처가에만 큰돈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퐁퐁남’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남녀의 위치가 뒤바뀐 상황도 존재합니다.

편의상 경제적 기여가 많은 쪽을 피해자, 그 배우자를 가해자라고 해보겠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상황에서 가해자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배우자의 헌신으로 내가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며 고마워하는 상황이 아닌 것이죠. 애초에 존경 혹은 감사표현이 있었다면 ‘퐁퐁남’ 서사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피해자로 돌아가 봅시다. 일을 잘 해내고 경제적으로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대인관계도 어느 정도 잘 해내야 합니다. 아마 상사에게는 성실한 부하직원이고 거래처나 손님에게도 친절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배우자나 연인 같은 가깝고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는 어떨까요. 건강하게 서로 의존하고, 서로의 관심사에 귀를 기울이고 신뢰를 쌓아가는 것에 익숙했을까요.

인간은 건강한 대인관계를 부모와의 애착을 통해 배워갑니다. 아기 때 주양육자가 나를 잘 보살펴주면 자신감을 가지고 주변 세상을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무섭거나 힘들면 안전한 품속으로 돌아와 안정을 되찾고 다시 탐험을 시작합니다. 어린이, 청소년, 성인으로 성장하면서도 원칙은 비슷합니다. 나이에 따라 책임은 커지지만 서로가 정한 규칙만 잘 지키면 서로 아껴주고 애정을 쏟는 관계 속에서 더 큰 세계로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아기 때는 부모 위주로만 이 대인관계를 경험했다면 선생님, 친구, 동료, 연인 등 다양한 관계를 통해 배워갑니다.

피해자가 만약 이것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면 문제를 초기에 바로잡으려 노력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배우자가 안정적인 애착유형을 가진 사람이라면 비록 ‘퐁퐁단’이 될 자질을 가진 사람이었더라도 서로 존중하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배우자를 보며 가족에게 헌신하기 위해 더 노력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일에서는 성공적이지만 가까운 인간관계에서는 서툰 사람이 유익한 관계와 유해한 관계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좋아하는 척 하는 것과 진심어린 감사를 구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많은 학부모들은 인간관계는 신경 끄고 공부만 하라고 합니다. 일에서 성공하면 알아서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어 있다고 하시죠. 어쩌면 그 부모들도 자녀에게 모범적인 관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교육이나 사회 시스템도 이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의견을 나누고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서로 감사하고 타협을 이뤄내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말이죠. 남성 혹은 여성 한쪽의 문제가 아니라 대인관계에 서툰 사람들끼리 만나서 발생하는 안타까운 결과라는 것입니다.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도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쩌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좋은 대인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 집단혐오, 남녀갈등의 출발지점일 수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좋은 관계에 공을 들이고 나쁜 관계로 인한 피해를 막아내면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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