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날은 화창한 날씨였다. 연둣빛으로 물든 산, 짭쪼름한 냄새가 훅 풍기는 바다, 갖가지 화려한 색깔로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어우러져 자연의 모습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도로는 확장되고 있고, 공공장소의 시설물도 산뜻하게 정비되고 있었다. 새로운 도약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역사적인 선거 결과를 기대하며 온 국민이 가슴을 졸였던 하루였다.
 이번 총선의 열기는 뜨거웠지만, 차분하고 깨끗하게 치룬 선거여서 우리의 민주의식이 높아진 증거가 되었다. 또한 이번 선거는 개혁을 열망하는 의지와 안정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균형 있게 드러났다. 그토록 바랐던 해방이 되었건만 우리는 민족 화합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었고, 비록 남한에서만 실현된 민주주의였지만 불과 오십 여년 만에 파란의 세월을 거치면서 오늘과 같은 경제 발전과 정치 현실을 이루어 냈다.
 우리나라는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사서는 고려 시대 인종의 명령을 받고 김부식이 기술한 "삼국사기"이다. 인종은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겪은 왕이다. 왕위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싶었던 인종은 즉위 23년 만에 묘청의 난을 평정했던 김부식에게 삼국사기를 편찬하게 했다. 신라, 백제, 고구려의 정치적 흥망과 변천이 주된 내용인 삼국사기는 유교적 사대주의 시각에서 기술하였기에 고대 사료를 싣지 못한 한계가 있다.
 그 뒤 1세기가 지난 고려 충렬왕 때에 보각국사 일연은 민족의 대서사시인 삼국유사를 편찬하게 된다. 충렬왕은 원나라의 세조의 딸과 결혼하고, 원의 강요로 일본 정벌에 두 번이나 나섰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원의 지나친 내정 간섭과 왕비의 죽음으로 정치에 염증을 느낀 충렬왕은 나중에는 음주가무와 사냥으로 소일했다고 한다. 자주성을 상실한 나라를 생각하며 일연은 삼국의 유사(遺事)를 비롯하여 우리의 국조(國祖)로 단군을 받드는 근거가 되는 단군 신화를 기술했다. 고려 때에 대몽항쟁 등 민족의 단합이 요구될 때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받들게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유럽에는 그리스 민족뿐만 아니라 이웃 민족의 신화까지 합해진 그리스 신화가 있다. 그리스 신화는 시대와 인종을 초월한 인간의 심리를 다루고 있다. 끊임없이 침략하고 정복을 당하면서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에 공상이 더해지고 변형되면서 그리스 신화는 풍부한 암시와 시사성을 띠게 되었다.
 영국 최초의 산문소설로 평가받고 있는 "아서왕의 죽음"은 왕위 찬탈을 놓고 귀족 간에 싸움을 벌였던 장미전쟁 당시에 출간되었다. 6세기경 켈트민족의 영웅으로 설정된 아서왕은 실재성이 희박한 인물이지만, 원탁의 기사 란셀롯과 아서왕의 전설을 탄생시킨 이유는 중세의 기사도를 정신적 활력으로 삼아 사치스럽고 허황된 봉건귀족사회가 덕을 실행하고 명예를 존중하는 사회로 복귀하기 위해서였다.
 역사는 신화를 만들고, 당대의 삶은 전설을 만들어 낸다. 비록 신화가 역사적인 사실은 아니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역사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처럼 역사가 짧은 나라에는 역사 속에서 빛나는 훌륭한 인물이 있을 뿐 건국신화는 없다.
 역사는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또한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 과거의 역사를 교훈 삼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상생의 정치를 약속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이 정치인을 믿어주길 원한다면, 정치인은 상생의 정치가 어떠한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민심은 하늘의 뜻이다. 하늘의 뜻을 읽은 사람은 행동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국민은 정치인에게 나랏일을 맡기고 자신들의 삶에 충실하기를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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