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총재직 사퇴 및 정계은퇴를 전격 선언했다. 김 총재는 19일 오전 마포 당사에서 "17대 총선 당선자들과 만나 패전의 장수가 무슨 할말이 있겠느냐. 모든 게 나의 부덕한 탓으로 깊이 반성한다"며 "오늘로 총재직을 그만두고 정계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김 총재는 이로써 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쿠데타에 가담하며 한국 정치사 전면에 등장한 이후 40여 년의 정치인생을 마감하게 됐다. 의미심장한 것은 5·16쿠데타로 등장한 그가 정계은퇴를 선언한 날이 우연하게도 4·19혁명 44주년을 맞는 날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40여년간 김 총재는 자의반 타의반 외유, 정치규제, 3당 합당과 민자당 탈당, 자민련 창당, 공동정권 파기, 16대 총선 참패 등 숱한 곡절을 겪으면서도 정치적 입지를 유지해 왔다. 이렇듯 숱한 위기상황에서도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충청권이란 텃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2년 6·13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참패하고, 소속 의원들이 잇따라 탈당한데 이어 그해 16대 대선에서 충청권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운 민주당에 텃밭을 잠식당하면서 충청권 맹주로서의 위상이 크게 위축됐다. 게다가 얼마전 4·15총선에서 비례대표 1번에 자리를 틀고 헌정사상 최다인 10선 고지에 도전했으나 지역구 4석과 정당투표 득표율 2.8%에 그쳐 결국은 낙마하고 말았다.
 김 총재의 정계은퇴는 따지고 보면 예측된 수순이었다. 익히 알고 있듯이 17대 총선은 미증유의 대폭적인 물갈이와 함께 의회권력의 교체, 리더십의 세대교체라는 엄청난 결과를 불러왔다. 우선 나이 면에서 30대 23명, 40대 106명 등 전후세대와 386의 원내 진출이 뚜렷해졌다. 30~40대 초선그룹이 의회권력의 중추로 부상한 것은 국정의 주도권이 아날로그 세대에서 디지털세대로 넘어왔음을 의미한다.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60년대 40대 기수론과 함께 부상했던 3김 시대가 40년만에 퇴출당한 셈이다. 김 총재의 은퇴는 그 같은 사실을 너무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19일 은퇴의 변에서 "노병은 죽진 않지만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는 맥아더 장군의 말을 인용했지만, 노 정치가의 쓸쓸한 인생역정이 그 속에 담겨있다.
 김 총재 은퇴와 함께 17대 국회는 이제 새로운 리더들에 의해 새로운 장을 열 수 있게 됐다. 생활정치를 통해 저마다 입지를 굳혀 가는 과정을 함께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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