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의 선거운동이 한창 진행되던 때에 울산광역시의원 한분이 찾아오셨다. 앞으로 선거에서는 TV토론의 비중이 커질 것 같은데, TV토론을 잘 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고민이 크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은 TV를 비롯한 미디어가 선거의 당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최초의 미디어 선거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울산에서는 3개 공중파 방송사가 경쟁적으로 총선후보 토론회를 실시, 후보들이 지역구별로 4~5번씩이나 TV를 통해 자신을 알릴 수 있었다. 다음 날 유권자들의 반응에서 TV토론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확인할수록 후보들은 만사를 제쳐놓고 토론회 준비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디어 선거라고 불릴 만큼 선거운동의 방식 자체가 획기적으로 변화됐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임하는 각 당 후보들의 능력은 크게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TV토론에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후보들의 피나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후보자별로 고용한 전문 코디가 의상이나 분장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는가 하면, 상대 후보로부터 혹독한 공격을 받으면서도 웃음 띤 얼굴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볼 때, 후보들은 미디어 선거의 핵심이 좋은 이미지 만들기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좋은 이미지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TV토론에서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 같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이미지의 조작이나 관리는 일시적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가정하여, 어느 후보가 설사 좋은 이미지로 "위장"하여 선거에서 요행히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다음 선거에서는 동일한 전략이 먹혀들 수 없다.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통용되는 정보사회에서 진실은 은폐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기본 전제 아래 후보자가 TV토론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첫째, 유권자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실에 입각하여 자신의 주장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막연한 소문이나 설에 의존하여 상대방을 공격하는 방법은 유권자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유권자들은 자료의 근거를 정확하게 밝히고, 숫자나 날짜 등 구체적 사실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후보에게 점수를 준다.
 둘째, 혼자서 하는 일방향 토론이 아니라, 상대방과 함께 하는 쌍방향 토론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상대방에게 답변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훈계조의 토론은 유권자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가장 세련된 토론은 간략한 질문과 그에 대한 상대 후보의 답변을 통해 자신이 의도하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셋째, 막연히 "잘 하겠습니다"라는 의지 표명의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할 방법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유권자들은 평상시에는 사장된 채 잊혀졌다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장밋빛" 공약들의 "재활용"에 식상해 있다. 좋은 이미지는 실현가능한 정책을 수반할 때에만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넷째, 지방분권의 시대를 맞이하여 중앙과 지방의 관계가 재정립되는 가운데 국회의원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의 추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앙정부의 권한 강화, 더 많은 국비지원 유치 등만을 주장하는 후보들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후보들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보다 많은 권한을 갖고 자율적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유권자들이 중앙 정치무대에 파견한 지방의 대표라는 소명감을 가져야 한다.
 이제 17대 총선은 끝났다. 그러나 미디어 선거의 비중은 더욱 커져갈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국회의원이나 지방선거에 나설 예비 후보들은 정직하고 명예로운 인생 경력을 쌓아가되, 이상의 방법을 고려하여 유권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기 바란다. 유권자들은 막가파적인 "일방향" 정치인이 아니라, 양심적이고 매력적인 "쌍방향" 정치인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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