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산과 들에서 새 봄의 기운이 묻어 나오는 화창한 휴일, 일상을 벗어난 작은 여행을 다녀왔다. 밀양은 울산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영남알프스의 험한 준령 때문인지 멀게 느껴지는 곳이다. 아주 오래 전에 가본 적이 있는 밀양은 사뭇 변화된 모습으로 반기는 듯했다.
 다만 한 가지는 그때 그대로였다. 영남제일루! 첫 눈에 보아도 영남제일루는 이름에 걸맞는 최고의 누각이 틀림없었다. 그 웅장한 규모와 아름다움, 주변 절경과의 조화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잘 보존되고 관리되고 있는 것이 기분을 흡족하게 했다. 깨끗하게 청소된 누각에 구두를 벗고 올라갈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는 것은 의외였으며, 그곳에서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은 금새라도 나를 풍류객으로 만들기에 족했다.
 밀양시내를 가로질러 평화롭게 흘러내리는 밀양강의 자태는 여체의 우아함으로 다가왔는데, 정말이지 영남제일루는 명당 중의 명당이 틀림이 없었다. 옛 선인들의 안목은 역시 탁월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변의 부속 문화재들도 깔끔하게 보존, 단장돼 관람객들의 기분을 흡족하게 했으며, 특히 뜰 안에 보존하고 있는 원형의 석화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장화홍련전"의 중심주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아랑"의 절개를 추모하고 있는 "아랑각"은 대나무의 절개에 걸맞게 대나무 밭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랑은 한국 여인의 전형인 정절과 다소곳한 선을 보여주고 있었다. 앞에 흐르고 있는 강물은 아랑의 정절을 위로하고 예찬하고 있는 듯했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지역문화 유산을 깔끔하게 전시하고 있는 문화전시실은 비록 규모가 작았지만 누구에게나 칭찬을 받을만큼 잘 정리정돈되어 있었다.
 서울에서 엄마와 함께 왔다는 어린 초등학생은 열심히 노트에 기록하곤 했는데 향토교육의 장으로써 손색이 없어 보였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고 맹활약을 했던 사명대사의 글과 관련자료를 보고 있노라니 어렸을 적에 국사시간에 배웠던 신출귀몰한 사명당의 모습이 떠올랐고, 앞마당에 위치해 밀양시를 굽어보고 있는 그의 동상은 마치 지금도 외세의 침략을 막아주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국내 대중가요의 유명 작곡가인 고 박시춘 선생을 기념하는 흉상이 얼마 전에 세워졌고, 바로 뒤에는 복원된 생가가 반가움과 친근감을 주었다.
 참으로 "밀양시가 문화재 관리, 보존에 만전을 기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부럽다는 생각과 동시에 울산이 떠올랐다. 갑자기 울산을 떠올린 것은 너무나 비교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재 울산에 산재하고 있는 각종 문화재급 유산 가운데 제대로 보존하거나 관리되고 있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만큼 옛 문화재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뒤쳐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밀양시가 문화유산에 대해서 잘 보존하고 관리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필자가 이렇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은 고 박시춘 선생을 폄하하려는 의도도 아니고, 밀양에 연고를 갖고 있는 향토민이어서도 아니다. 울산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비교가 되는 상황에서 솔직한 느낌인 것이다.
 예컨대 울산이 낳은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의 생가복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수년전부터 생가복원 얘기가 있어 왔지만 아직 요원한 상황이고 보면 울산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너무 부족한 것은 아닌가 생각됐다.
 외솔선생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우리 문화와 역사적으로 따져보더라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데, 왜 울산은 그런 분에 대한 예우가 이렇게 허술한 것인지 짚어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울산도 이젠 많이 달라져야 한다. 과거 공업도시의 대명사로써 갖는 공해에 찌든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어내고 신라 천년의 영남문화의 중심지로써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오랜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부터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경제적 발전과 교육환경 개선에 못지않은 보다 근본적인 작업일 것이다. 문화는 우리의 본질을 이루고 있음과 동시에 우리의 가치를 대변하는 유·무형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갈고 닦아 후손들에게 온전하게 전수하는 것 또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는 천년대계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