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한강의 기적으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급성장과 공업단지 지정과 함께 시작된 울산의 급성장은 속도가 비슷했다. 급성장에 따른 명암을 모두 갖고 있는 것 또한 닮았다.
 우리나라가 좁은 국토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는 세계무대에 나설 만큼 성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울산도 우리나라 어느 도시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다.
 그러나 외형적 성장만을 추구하다보니 번지르르하지만 천연섬유인 비단(견)처럼 깊이 있는 광택이 아니라 인조견처럼 얄팍한 때깔에 가깝게 치장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닮은 점이다. 비단과 인조견은 언뜻보면 광택이 비슷하나 그 깊이와 몸에 감기는 맛에 완전히 다르다.
 물론 최근들어 국민소득 1만불을 달성하고 세계화를 추구하면서 적지 않은 질적 성장을 이루었다. 문화를 비롯한 곳곳에서 비단에 가까운 깊이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평가도 듣고 있다. 오천년 역사가 얄팍한 인조견의 문화를 물리치고 비단의 품격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총선결과에서도 울산은 한국의 축소판이었다. 현 정부가, 모든 정당이 그토록 원했던 전국정당을 일부나마 이루어냈듯이 울산에서는 4개정당이 고루 의석을 차지하면서 전국에서 지역주의를 탈피한 모범도시가 됐다. 겨우 6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이 작은 도시에서 이처럼 우리나라를 대변할 만한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값싼 인조견의 유혹을 과감하게 떨치고 비용이 들지만 품격있는 비단을 선택한 울산시민은 참으로 현명했다.
 총선은 끝났고 "비단의 품격"은 시작됐다. 이번 총선에서 울산은 7명(비례대표 포함)의 국회의원을 만들었다. 울산 정치사에서는 처음으로 4당에서 의원이 탄생한데다 숫적으로도 가장 많다.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졌다. 이제 우리에게 품격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비단은 세계역사에서 중요한 자원이었으며 역사의 지평을 넓힌 원천이다. 중앙아시아를 횡단하는 고대의 동서교통로를 우리는 비단길(Silk Road)이라 부른다. 이 길을 통해 고대 중국의 특산인 비단이 서쪽으로 운반됐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비단길은 단순히 비단을 유통시키는 통로의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동서를 잇는 중요한 무역로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동서문화를 전달하는 큰 의의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비단길이 필요하다. 이번 총선에서도 변함없이 동서로 확연히 갈라진 이땅에 하루빨리 비단길을 놓아야 한다. 지난 16대 총선에 비해 울산을 비롯한 영남지역 일부에서나마 노란색깔이 나타나 희망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동서화합이나 지역주의 탈피를 말하기에는 턱없이 미흡하다. 총선이 끝난 뒤 지도위에 칠해진 정당의 색깔은 보기에도 민망했다.
 한나라당 3석, 민노당 2석(비례포함), 열린우리당 1석, 국민통합21 1석 등으로 황금분할을 나타낸 울산도 이제 동서화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울산의 정치적, 이념적 지형도를 동서로 양분하기는 어렵지만 동과 서의 정서는 다분히 나누어져 있다. 동구와 북구가 진보적이라면 중구와 남구, 울주군은 보수적이다. 또 동구는 중구·남구·울주군과 거리상으로도 떨어져 있지만 정서적 거리도 만만찮다.
 이번 총선을 통해 보수로 대변되는 한나라당과 국민통합21이 동구와 중·남구에서 의석을 차지했고 진보정당인 민노당이 북구를, 개혁을 표방한 열린우리당이 울주군을 차지해 이념적으로 섞여 있는 듯하지만 표의 향방을 전적으로 시민들의 정서로 보기는 어렵다. 광택이 있다고 모두 비단은 아닌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일부 전국정당이 되고 울산이 다당체제로 바뀌었다지만 진정한 지역주의 극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동서비단길을 개척하는 개척자의 정신이 절실한 시점이다. jms@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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