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명수 전 울산시의원

울산과 부산 등 원전 도시들이 핵폐기장으로 전락할 위기에 직면했다. 우리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유출로 환경과 생태계가 회복 불능의 피해를 입었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에서 ‘원전과 핵폐기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같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특히 원전이 밀집한 울산-부산-경주 지역은 대표적인 지진 위험 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시설 영구화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정부는 지난 27일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안건을 의결했다. 이번 계획에는 ‘처리 시설을 마련하기 전까지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부지 내에 저장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또 ‘고준위 방폐물 부지 선정 절차 착수 후 37년 내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기본계획대로라면 중간저장시설이 가동되기 전까지 최소 20년은 원전 소재 지역 내에 고준위 방폐물 저장(보관)이 불가피하다.

특히 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이 확보되면 고준위 방폐물 관리시설(중간저장시설 및 영구처분시설) 논의가 오히려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빌미가 되는 등 ‘핵폐기장 장기화’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는 원전 소재지를 영구 폐기장으로 고착시킬 우려가 매우 높은 독소조항이다. 원전 지역 지자체와 주민들의 충분한 의견수렴과 동의절차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원전으로 발생하는 현안에 공동대처하기 위해 울산을 비롯해 부산, 경북, 전남도 등 원전 소재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한 행정협의회는 “정부의 기본계획안에 반대하고, 전면 재검토를 촉구한다”는 내용의 공동 건의서를 산업통상자원부에 전달했다.

핵 발전에 사용된 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남은 대량의 방사성 물질인 사용후핵연료는 치명적 유독성이 사라지는 데 10만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정부안대로 밀어붙이면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 운영기한이 명시되지 않아 한수원이 자의적으로 증설할 수 있고 사실상 영구처분장의 빌미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 ‘탈원전’을 주창한 문재인 정권이 2017년 고리 1호기가 영구 정지된 이후 임시저장시설에 보관 중인 핵폐기물에 대한 구체적인 처리 방안을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도 수도권과 떨어진 원전 지역 주민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처사다. 이로 인해 원전 지역 주민은 방사능 피폭 위험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안전과 생명, 경제에 끼치는 위험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9년 5월 전남 영광군을 비롯 전국 10개 지자체가 ‘사용후핵연료 보관세’ 도입 건의문을 발표하고 법률안 개정을 요구했으나 허사였다. 산자부는 지역자원시설세(발전량 ㎾h당 1원)에 더해 사용후핵연료 등 방사성폐기물에 추가로 과세하는 것은 이중과세라며 법안 개정에 반대했다. 이렇듯 제도적으로 합당한 지원은 외면한 채 지역에서는 위험물질만 차곡차곡 쌓이고 자칫 영구 핵폐기장이 될지도 모르는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

수도권 중심주의에 빠진 중앙정부가 원전 지역에 또다시 희생만 강요한다면 대규모 충돌 사태도 배제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원전 지역 정치권과 지자체, 시민사회 모두가 합심해 영구 핵폐기장화 하려는 정부의 시도를 막아야 한다.

천명수 전 울산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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