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 조현미

비행기가 지나간다
높푸른 하늘에 밑줄 좍 ── 그으며
멀리멀리 날아간다
고추 따던 식구들도 비행기를 따라간다
할머니는 제주도 고모 집으로
외숙모는 바다 건너 베트남으로
내 마음은 말레이시아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간다
비행기는 매일매일 바다를 건너는데
높고 넓은 하늘길을 쉬지 않고 나는데
코로나 19가 바닷길을 막았다
하늘길을 막았다
식구들 마음처럼 고추는 붉게 익고
외숙모 목은 한 뼘 더 길어졌다
혼자서만 가는 게 미안했는지
비행기도 …… 말 줄임표를 남긴다
잘 지내시나요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식구들 마음에 밑줄 쫙 ── 긋고 간다

▲ 조현미
▲ 조현미

■당선소감-조현미 / 빛의 이면, 그림자의 나날 잊지 않겠다

동심과 시심 사이에서 오래 서성거렸다. 막막했고 자주 길을 잃곤 했다. 내 안의 작은 아이에게 무시로 말을 걸고 더 많은 시편을 찾아 읽었지만, 마음속 허기는 쉬 채워지지 않았다. 무량 길을 걸었고 나무와 풀과 꽃과 작은 새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놀이터 기다란 나무의자에 앉아 비눗방울 같은 아이들 웃음소리를 받아 적었다. 건널목 앞에서, 승강기 안에서 처음 보는 아이에게 ‘어떤 동시가 좋아?’ 무례한 질문을 건네기도 했다. 나의 글은 모두 그들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그들이 내 글의 원적이다.

북쪽 찬 하늘 덥힐 국을 푸고 계실까, 읽고 쓰는 재미를 물려준 엄마는 나에게 가장 빛나는 별이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같은 큰오빠와 손가락 같은 형제자매, 내 모든 동시의 맨 처음 독자인 햇살 같은 딸 소연, 무심한 척 응원해 준 남편, 고맙고 사랑한다.

빛을 준 경상일보와 손잡아 준 선생님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빛의 이면인 그림자의 나날을 잊지 않겠다. 더러 에돌지라도 느루 가는 글을 쓰려한다.
□약 력
-목포문학상, 천강문학상 수상

 

▲ 전병호
▲ 전병호

■심사평-전병호 / 힘든 시대에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

예심을 거쳐 본심에 넘어온 작품은 8명의 28편이었다. 이름도 없고 번호로만 표시된 원고를 한 편 한 편 새겨가며 읽는데, 문득 그동안 응모자들이 당선의 영예를 얻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밤을 홀로 새웠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보이지는 않지만 작품마다 응모자들의 열정과 갈망이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작품의 수준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자기만의 목소리가 없거나 치열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기성 시인들의 작품을 흉내 내는데 그치거나 뒷심 부족이 느껴지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놓칠까 까치는’은 시를 웬만큼 써본 분의 작품이었으나 이 작품의 소재, 주제 역시 많이 다루어 온 것이다. 소재는 같더라도 자기만의 시선으로 이미지와 메시지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엄지척’도 눈길을 끄는 작품이었으나 중심이 되는 시상은 기성 시인의 것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어서 가장 먼저 탈락시켰다.

최종적으로 151번의 ‘비행운’과 ‘괜찮아요, 라는 말’이 남게 되었다. 이 중에서 ‘비행운’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결혼 이민자인 외숙모는 코로나19로 인해 하늘길이 막혀 고향을 오고 갈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외숙모를 동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시적화자의 마음이 시대적 상황과 관련지어 많은 힘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며, 큰 동시 나무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약 력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방정환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세종아동 문학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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