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에 단골로 등장하는 단어가 이른바 "철새 정치인"이다. 경쟁후보에 의해 공격 대상도 되고, 낙천·낙선 대상자로 지목되면서 혼쭐이 나기도 했다. 최근 막을 내린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충분히 입증됐다. 정치인의 당적 변경에 대한 법리적 해석은 분분하다. 행위 이후의 정치적 지위에 대한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이 문제가 선거쟁점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권자 의사를 무시한 독단적 결정이라는 점이 첫 번째일 것이다. 유권자들의 선택기준 가운데 후보 개인의 자질이 큰 몫을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구조의 특성상 정당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정당 자체의 이합집산으로 경력변화를 일으켜 당적이 바뀐 경우는 한편으로 이해가 간다. 공천심사를 앞둔 당적 변경이나 임기 도중의 당적 이탈이 항상 문제다. 대세영합형 당적 변경은 정치적 상황에 따른 "줄서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념이나 정책에 연연하지 않고 정치적 목적만 챙기려는 속내가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철새 정치인"의 낙인이 찍히는 순간 그 정치인은 변절자, 기회주의자로 매도되기 십상이다. 선거에서 이긴 당선자는 물론 고배를 마신 낙선자도 마찬가지다. 당내에서도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를 럭비공 같아 경계대상이 되기도 한다. 당사자가 출마할 때마다 공격받고 공격하는, 수십번 흠씬 고아낼 "탕거리"라고나 할까.

울산의 거대한 정치흐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면서 울산에서 거대한 정치흐름이 목격됐다. 한나라당 소속이거나 당원이던 상당수의 시·군·구 의원들이 열린우리당 옷으로 갈아입었다. 정당 공천으로 출마하지는 않았지만 "내천"이라는 형태로 사실상 정당공천을 받은 기초의원들이 대부분이다. 출신 선거구의 바닥민심을 가장 잘 요리하고 일선 선거조직을 사실상 움직인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탄핵폭풍 소용돌이 속에서 울산정가를 황금분할 시킨 선거결과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번 선거는 울산 정가 지형도를 대폭 바꾼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체로 보수세력이 두 가닥으로 나누어지고 개혁과 진보세력은 연대를 이루지 못한 채 "마이웨이"를 선언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보수세력이 주축을 이루는 가운데 개혁과 진보, 세 갈래로 구성됐던 때와 큰 차이를 보인다. 시·구·군 의회의 색채가 다양해졌다는 점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특히 울주군의회 의원 7명이 열린우리당으로 돌아서면서 한나라당 일색에서 색깔이 역전됐다. 보수세력으로 분류되는 강길부 전 건교부 차관이 후보로 결정되면서 이런 변화는 가속도를 더했다. 변양섭 의장, 김철준 부의장을 비롯 김석암 운영위원장, 서완영 내무위원장, 김지호 신동두 최인식 의원 등 7명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중구의회의 김영길 의원도 박빙의 선거전이 치러지는 도중 한나라당 일색의 중구의회에서 뛰쳐나왔다. 남구의회는 국민통합21 당적이던 김두겸 의장과 윤원도 운영위원장이 각각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입당했다. 이종범 전 울산시의원도 총선출마를 위해 무소속에서 열린우리당으로 입당했으나 당내경선에서 탈락했다.

당적변경 그럴듯한 명분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유권자들과 상의 없이 결정해 놓고도 명분은 그럴싸 하다. "지역발전을 위해 힘있는 여당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지역현안 해결을 위해 원내교섭 정당 선택",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런 명분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얼마나 먹혀들지는 유권자들의 몫이다. 향후 단체장 또는 지방의원 선거 공천확보를 위한 보험에 들었다는 고백은 한 마디도 없다. 이들이 다음에 출마할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평가를 어떻게 받을지가 궁금해진다. bigbell@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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