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의 1~2%, 누구에게나 생길만한 일
편견 버리고 먼저 도움주는 작은 손짓
힘을 합쳐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갔으면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은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인구의 1~2%가 겪는다고 알려져 있는 이 장애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함,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흥미, 활동이 특징입니다. 주인공은 언어적,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문제로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합니다. 그녀는 반복적인 행동으로 물건을 규칙에 맞춰 정리하고 말을 따라하는 반향어를 합니다. 고래처럼 제한된 영역에 큰 관심을 보이고 옷 라벨의 촉감에 예민해집니다.

자폐스페트럼은 2013년 개정 전 자폐성장애, 아스퍼거, 아동기 붕괴성 장애로 분류되었으나 고기능 자폐와 아스퍼거의 구분도 어려웠습니다. 이에 개인의 증상이 연속선상에 있음을 강조하며 자폐스펙트럼으로 통합됐습니다. 소아발달에 흔한 또 다른 문제인 지적장애는 기억, 추론, 언어 등 지적 능력이 기준입니다. 우리나라는 IQ 70 미만을 기준으로 하는데 34 이하의 중증은 초등학생 수준의 기능도 어려우니 혼자서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50~70 사이는 훈련을 통해 단순한 직업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능이 낮음을 의미하는 같은 진단명 안에서도 양상이 다양합니다.

자폐스펙트럼은 지능이 낮은 경우부터 높은 경우까지 다양하지만 낮은 경우가 더 흔합니다. 사회적 상호작용 문제도 경증부터 중증까지 다양합니다. 과거 ‘고기능 자폐’는 지능이 일반인과 유사하다는 의미이지 IQ 140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전화번호부를 한 번에 외우는 것 같은 특수한 능력은 서번트 증후군이라 불리는 극소수에 해당합니다. 우영우의 사회성 문제는 약한 수준이고, 서번트 능력은 아니지만 지능이 좋은 편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지능과 사회성만 봐도 이렇게 복잡합니다. 그래서 정신과 진단은 연속선상(스펙트럼)에 있다고 말합니다. 사회공포증과 수줍음 많은 성격이 칼로 자르듯 나눠지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인식에는 굉장히 심한 경우만 질병으로 생각합니다. 중증 자폐아를 둔 부모님이 우영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일부 이해가 갑니다. 제가 과기원 학생들을 수백 명 보는 동안 이런 양상을 가진 경우는 한 명 기억합니다. 스스로 항상 히끼꼬모리 같았다고 말하는 환자였죠. 그런데 병원에서 인턴을 할 때 봤던 선배들 중에도 가끔 이런 사회적 상호작용 문제를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정신과의사가 되어 그 선배를 언급할 때 다들 같은 평가를 내리는 것을 보면 우영우가 불가능한 케이스는 아닐 것 같습니다.

제 아이도 유치원 무렵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기 때부터 봐온 많은 정신과의사들이 놓칠 정도로 증상이 약했습니다. 언어발달이 느려 소아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을 때도 주치의는 자폐를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발달장애 연구도 하고 있었죠. 그런데 언어의 격차가 더 벌어져 대학병원 검사를 하니 자폐 기준을 만족했습니다. 수년간 집중 치료를 받았더니 사회성은 자폐 범위를 벗어나고 지능도 나아져 병력을 모르는 선생님께 수학과 영어에 재능이 있다는 얘기를 할땐 웃음이 나옵니다.

아마 정신과의사인 부모가 가장 걱정하는 진단이 자폐일 것입니다. 함께 있어도 외로워지니까요. 아이가 눈을 맞출 수 있는지 긴장하며 알아봅니다. 아이들이 굴러가는 물체를 좋아하는 것이 당연한데 혹시나 제한적이고 반복되지 않는지 마음 졸이며 관찰합니다. 치료에 반응이 좋은 편이라 금세 일대일 수업의 수준을 넘었습니다. 비슷한 경증 아이들과 그룹 수업을 해야 하는데 큰 발달센터가 아니면 맞는 짝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경증에도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갔는데 중증의 경우는 심각할 것입니다. 보호자들은 도움은 못 받고 편견에 시달릴까 진단을 피하게 됩니다. 저희 연구만 참여하고 병원 진단은 안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하는 보호자도 있을 정도입니다.

1~2%는 누구에게나 생길만한 일입니다. 결혼도 잘 하지 않는 세상인데 이런 일이 무서워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생깁니다. 의사도 감당하기 쉬운 일이 아닌데 평범한 직장인은 어떨까 생각하게 됩니다. 특수학교를 짓는데 부모가 무릎을 꿇어야 하는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 위험을 감당하기 쉽지 않습니다.

의뢰인의 자폐가 중증이라 자신도 잘 모른다는 우영우 변호사처럼 타인을 편견 없이 알아가려는 자세를 갖는 것은 어떨까요. ‘봄날의 햇살’ 최수연 변호사처럼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처음에는 편견을 보였지만 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상사 강기영 변호사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런 사람들과 있으면 일이든 일상이든 더 잘 될 것 같습니다. 서로가 힘을 합쳐 더 좋은 팀을 만드는 것처럼 우리 사회도 더 좋은 곳이 되길 바랍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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