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붙들고 한없이 울었는데, 오늘 아침 임석 시조시인님의 사모곡(경상일보 12일자 8면)을 읽으면서 또 가슴이 시려옴을 감당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월가도 잊혀지지 않고 두고두고 가슴저리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내 마음속에만 가득찬 회한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어머니 같이 위대하고, 존경스럽고, 또 다정다감한 분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도 어머니가 살아계셔서 보고싶을 때 달려가서 한없이 뵈옵고, 구경도 시켜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손수 만들어 드시게 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아들, 딸들이야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저같이 어머니를 젊어서 잃은 사람은 불행합니다. 저는 어머니가 한없이 보고싶을 때 찾아갈 곳이 고향의 뒷동산 어머니 무덤입니다. 엎드려 많이 울고 오지요. 23년전 어머니께서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전해듣는 순간 세상이 칠흙같이 어두워졌고 이 세상에 오직 홀로남은 고아가 된 심정이었습니다.
 출세해 볼 것이라고 중앙에 진출해서 미관말직에 연연하면서 효도 한번 못해드린 것이 뼈아프고, 살을 에는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머니 살아생전에 모시지 못한 회한이 지금도 가슴속 큰 응어리로 남아있습니다.
 서울에서 밤차를 타고 진주에 도착하니 어머니께서는 이미 유명을 달리하셔서 당신께는 6남매 중 외동아들로서 임종도 못한 불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눈을 감으셨겠습니까. 어떻게 보내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상을 치르고 열차로 상경하다 대전쯤에서 의식을 잃고 갑자기 쓰러져 상반신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고, 혀가 굳어 말도 못하는 신고를 겪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이 커 중풍이 몸을 덮쳤습니다.
 3개월간 직장을 쉬면서 어려운 한방치료를 하여 조금씩 몸은 회복이 되어갔습니다만 어린애같은 몸부림으로 6개월을 아침마다 엉엉 울은 기억이 지금도 선합니다. 가족도 따라울고".
 지금도 어머니의 영정을 사무실 서랍에 모시고 출퇴근시에 반드시 인사를 합니다. 살아생전에 어머니는 김영님씨의 회심곡 듣기를 좋아하셔서 얼마 전 어머니의 영정을 모시고 KBS홀에서 김영님씨의 회심곡을 들려드리고 스스로 못다한 효를 생각해봤습니다.
 며칠 전 어버이날 아침에 서울에 있는 애들로부터 효도전화가 오고, 큰 딸애는 오가피, 홍삼 탄약을 지어 보내고도, 꽃바구니도 잊지않고 보내와 흐뭇한 마음 오래 갈 것 같습니다.
 부모가 살아계신 행복한 사람들이여, 모시고 효도하십시오. 불효는 평생을 살면서, 내 기쁨과 즐거움의 걸림돌이 됩니다. 행복을 앗아갑니다.
 어머니! 삼가 명복을 비옵니다. 불효를 용서하십시오.
 어머니! 이 다음에 저가 어머니 따라가면 만년(萬年)을 놓치지 않고 정성드려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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