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도 없는 놈이 병까지 얻었는데 이런 고통을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집니다. 이젠 눈도 멀어 앞도 볼 수 없는 지경이 돼버렸습니다"
 신장장애 2급 판정을 받고 말기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김원기(45)씨. 중구 태화동 동강병원 4인실 병동에서 천장을 바라보는 김씨의 눈망울에는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동갑내기 부인 이정애씨와 2남1녀 가정의 가장인 김씨는 10여년 전 급성당뇨로 병원치료를 받아오다 지난 3월부터 1주일에 2차례 혈액 투석치료까지 받고 있다.
 최근에는 당뇨가 심해지져 눈마저 멀게 됐다. 바로 눈앞의 사람도 윤곽만 흐릿하게 볼 수 있을 뿐 주변의 도움없이는 화장실도 못가는 실정이다.
 담당의사는 방치할 경우 조만간 실명하게 된다며 수술을 권유했지만 아이들 학용품 값조차 없는 김씨의 형편으로는 수술비 120만원은 엄두도 못낼 큰 금액이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인 김씨 가족의 한달 소득은 생활보조금 45만원과 장애수당 9만원을 포함한 54만원. 이 돈으로 의료급여에서 제외되는 치료비와 4가족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중매로 만난 부인과 15일만에 결혼하면서 큰 애가 벌써 고3이지만 남들 다 하는 과외나 학원 한 번 제대로 못시켜 마음이 아픕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아는지 애들도 투정을 부리지 않고 잘 커줘 고맙기만 합니다".
 부인 이씨는 파출부 일을 나가면서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해왔다. 용돈 한 번 마음껏 줘본 적이 없어 늘 미안한 마음이지만 착실하게 커준 자식들을 보며 이를 악문다. 하지만 이씨마저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지난 3월부터는 10여년동안 해오던 파출부 일을 그만두게 됐다.
 이씨는 최근 어려운 형편에도 컴퓨터를 하나 장만했다. 학교에선 워드로 작성된 보고서가 아니면 숙제를 받지 않아 친구집과 PC방을 전전하던 둘째(15·중3)와 셋째(14·중2)가 너무 안스러웠기 때문이다.
 김씨는 고등학교까지는 정부에서 지원해준다고 해도 애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인공신장기를 통한 혈액투석 치료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다 모든 짐을 부인에게 지우게 돼 미안하다.
 김씨는 "신부전증 판정을 받고 혈액투석을 하게 되는 순간 제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지 생명을 연명하고 있을 뿐 살아 있는게 아닙니다. 애들 얼굴이나 또렷이 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애들 생각만 하면 밤에 잠도 오지 않습니다"고 한숨지었다. 특별취재반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