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려 제가 위세를 부린다는 말이 있다. 즉 호랑이 앞에 여우가 가면, 모든 짐승이 호랑이를 겁내어 달아나는 것을 마치 여우 자기를 겁내어 달아나는 것처럼 호도한다는 뜻이다.

 이 "호가호위(狐假虎威)"의 고사는 중국 위(魏)나라 초선왕(楚宣王) 때에 강을(江乙)이란 변사가 정권과 군권을 모두 쥐고 있는 소해휼이란 실권자를 빗대어 한 말에서 연유한 것이다. 즉 실세인 소해휼은 임금님을 등에 업고 왕 이상의 위세를 부리는 여우같은 사람이란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호가호위하는 무리들이 참으로 많다. 내가 정계의 거물 모씨와 친하다느니, 관계의 모씨와는 둘도 없는 사이라느니 떠들어대며 자기자신이 마치 큰 인물인 것처럼 행세하며 위세를 부린다. 이와 같이 권세있는 사람을 자기자신과 동일시하는 병적 현상을 우리는 도처에서 흔히 보게 된다.

 과거 우리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한 집안에 높은 벼슬이 나면 촌수가 가깝든 멀든 그 집안 전체가 양반이 되어 거들먹거렸다. 잘나간다는 유지 집에 초대되어 가보면 응접실엔 대형 사진곽 하나쯤은 기본으로 걸려있기 마련인데, 대통령 각하와 악수하는 장면이나 혹은 각계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찍은 사진을 볼 수 있다. 그것이 그 집 주인을 평가하는 하나의 척도가 되는 성싶다. 그래서 어떤 사기성 있는 위인은 자기의 사진과 그 권력자의 사진을 적당히 짜깁기하여 직접 만나 찍은 것처럼 위장하는 수도 있다고 한다.

 저명인사의 저서를 보면 으레 그 앞면 몇페이지는 거물들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 게재되어 있기 마련인데, 이것이 모두 자신을 과시하는 방략인 것같다.

 97년 대선때 그 당시 김대중 후보의 국제담당 보좌관을 지냈다는 이 영악하고 당돌한 위인은 마치 고속버스를 타고 천리길을 사람들과 동행하는 파리 같이 이 나라 실세들에게 붙어 비리를 저질러 왔다. 오늘날 최규선과 그 관계자들은 마치 sbs 인기 사극 "여인천하"에 나오는 군상들과 어찌 그리 흡사한지 "역사는 순환한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조선조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를 등에 업고 대궐을 제집 안방 드나들듯 하는 정난정과 작금의 최씨 행태는 시대와 상황에 있어서 다소 차이는 있어도 여러 모로 닮은 꼴이다.

 정난정은 호가호위로 권세를 누리다가 결국 유배지에서 그의 내연의 남편인 윤원형과 함께 금부도사의 사약이 당도하기 전에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다. 그리고 작금의 불나방 최규선도 거미줄에 걸려 갇힌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백도주와 장대인에게 뇌물을 먹은 살생부를 들고 갑론을박 피비린내나는 사투를 벌이던 김안로나, 심정의 무리들도 결국은 사약 한 사발로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진다. 지금 최규선의 살생부를 검찰이 잘 읽어볼지 의문이다. 검찰이 살생부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관계 실세들은 좌불안석이다.

 인격이 바로 선 다음에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지식은 필시 나쁜 방향으로 활용되기 마련이다.

 하여튼 최규선의 그 지략과 재주가 아깝기도 하다. 세계 금융계의 대부인 조지 소로스, 전 미국 하원 아태소위원장인 스티븐 솔라즈, 철없는 소녀 기절시키는 마이클 잭슨, 산유국 사우디의 왕자 알 왈리드 등 세계적 거물들을 국내에 초청(물론 호가호위에 의한 전략이지만)할 정도의 능력이라면 그 능력을 자신의 영달보다 국가사회를 위해 헌신하는데 썼더라면, 이렇게 정국이 소란스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권고한다.

 줄서기를 잘하면 출세한다는 이 호가호위의 전략은 그 수명이 짧다. 그러므로 이 악성바이러스가 침투하지 않도록 평소 인격관리를 잘 해야 함은 물론이고, 이 호가호위의 교훈을 깊이 새겨 자기자신을 엄격히 검증하고 정직하게 실력을 쌓는 길이 영원한 입신양명의 길이란 것을 깊이 인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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