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한지 한달 안된 ‘생성형 챗GPT’
문학·음악·미술 등 예술분야까지 넘봐
AI 쓰고 사람 가필…창작 사라질 것

▲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한국고용정보원’이 예견한 미래사회의 직업군에 대한 분석은 틀렸다. 강산이 바뀐다는 10년이 되기도 전에 엉터리가 되고 말았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 2016년 1월에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디지털 혁명에 기반해 물리적 공간, 디지털적 공간 및 생물학적 공간의 경계가 희석되는 기술 융합의 시대’로 ‘4차산업혁명’을 정의했다. 그때부터 세계가 AI와 로봇 기술의 등장을 앞둔 미래에 대해 희망으로 부풀기 시작했다. 결론은 오산이었다. 희망이 아니라 두려움이 먼저 찾아오고 있다.

그때 세계 각국이 미래사회의 ‘고용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사라지거나 새로 생길 직업에 대한 정보를 쏟아냈다. 한국고용정보원도 2016년 3월에 국내 주요 직업군 400여개 가운데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에 따른 직무 대체 확률을 분석해 발표했다. 한국고용정보원도, 그것을 토대로 강의했던 필자도 ‘섣부른 전망’을 이야기하고 말았다.

한국고용정보원은 ‘화가나 조각가, 사진작가, 작가 등 감성에 기초한 예술 관련 직업’과 ‘음식 서비스 종사원, 대학교수, 출판물기획 전문가, 초등학교 교사, 귀금속 및 보석 세공원 등 직업’은 자동화 대체 확률이 낮을 것으로 분석됐다. 필자 또한 적어도 시인이란 고유한 자리는 AI가 침범하지 못해 살아남을 것이라고 큰소리쳤지만 틀렸다. 불과 출시 한 달이 안 된 Open Ai사의 ‘생성형 챗GPT’의 등장으로 말이다.

챗GPT가 등장하고 문학, 음악, 미술을 비롯한 모든 예술 분야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필자는 실제로 시를 쓰는 제자들과 함께 챗GPT의 시 창작 능력을 시험해 보았다. ‘마산의 3·15의거’에 대한 시를 ‘김수영 시인’과 ‘이육사 시인’ 스타일로 써달라고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챗GPT는 불과 2~3분 안에 각각 16행, 12행의 시를 창작해 제출했다.

김수영 시인 스타일은 ‘봄바람 불어오는 3월,/ 고요한 밤길을 지나는 나,/ 어느새 시끄러운 발소리,/ 국민들이 모여 움직이네’로 시작했다. 이육사 시인 스타일은 ‘삶의 힘은 국민의 힘,/ 우리 누구도 우리를 쓰러트릴 순 없네./ 3·15의거, 우리의 자유를 지키려고,/ 광복의 길을 가고 있네.’로 시작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감동과는 거리가 먼 시였다. 김수영 스타일에서 의로운 시민의 발소리를 ‘시끄러운’으로 표현한 것이나, 이육사 스타일에서 3·15의거를 ‘광복의 길로 가고 있네’라는 표현은 시로 볼 때 감점 요인이었다.

하지만 ‘알파고’가 ‘이세돌’을 상대로 보여준 자기 학습능력을 예상한다면, 하룻밤 사이 수만 편의 시집을 읽고 창작해 이내 깜짝 놀랄 시를 보여줄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필자는 시인의 자리에 ‘훅’하고 치고 들어온, 영어로 쓰고 국문으로 번역해 내는 ‘AI Poet’에 위협을 느꼈다. 한 시인이 평생을 통해 터득할 창작력을 하룻밤 사이에, 아니 순식간에 따라잡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AI의 작품에 사람이 가필한다면 정말 창작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AI와 사람의 합작은 많은 부작용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날 밤 필자는 14년간 계속해온 ‘시 창작’이란 과목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젠 미래의 시인을 키우는 과정인 백일장이며 현상공모, 신춘문예는 제도적 변화가 없이는 챗GPT에게 판판이 판이 깨지고 말 것이다.

어디 챗GPT가 시에 만족할 것인가. 문학의 전 장르는 물론 신문 기사, 책자발간, 영화, 드라마 등 모든 분야의 주인이 될 것이다. 미술은 ‘Dall·E2’가, 동영상은 ‘Pictory’가 모든 일을 혼자서 척척 해내고 있지 않은가. 코딩까지 가능하니 이내 수익 창출이 가능한 유튜브까지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구글과 네이버는 낡은 기능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이내 사람의 일자리는 급격히 줄어들고 AI가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물론, 이건 필자의 예상 시나리오일 뿐이다. 분명한 건 미래는 우리가 상상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정밀하게, 치밀하게 사람의 자리로 진군해오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사람이 지혜롭지 못하면 인간의 미래는, 어느 미래 영화처럼 로봇의 명령을 받으며 노예로 살아갈지 모른다.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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