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팔은 자동화 설비, 기계의 일종
로봇 미래는 휴먼스케일·휴머노이드
크기·모양 인간 닮을수록 좋은 디자인

▲ 정연우 전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 정연우 전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로봇, 우리가 잘 아는 로봇 개념을 잠시 빼고 디자인으로 정의해본다. 형태와 기능이라는 태그를 붙이면 제법 다른 분류점이 나타난다. 형태 태그. 사람을 닮은 로봇과 사람을 닮지 않은 로봇으로 나눈다. 다음은 기능 태그. 한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로봇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로봇이 있다.

먼저 형태. 스스로 움직이는 물리적 기계라는 로봇 범주로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산업 현장, 공장에 배치된 로봇 팔이다. 생산 라인 곳곳에서 순식간에 차체를 번쩍 들어 휘휘 돌리고, 옮기고, 용접하는 거대한 팔들은 우리의 머릿속에 가장 쉽게 떠오르는 로봇의 비주얼이다. 비율을 달리한 축소판들도 많다. 반도체 공장에도 있고, 초정밀도를 요구하는 공정에도 쓰인다. 요즘에는 요리하고 커피를 만들거나 그림을 그려주는 로봇 팔들도 있다. 일상에서도 이제 로봇OO이라는 이름이 달린 시퀀스가 등장하게 됐다.

우리가 휴머노이드 로봇이라 부르는, 사람을 닮은 로봇은 의외로 실제 일상에는 아직 잘 안 보인다. 사람처럼 걷고 뛰고 앉았다 일어서고 손발을 사용하며 완벽하게 동작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아직 없다. 그러나 수많은 SF영화, 애니메이션, 만화와 문학작품 속 휴머노이드 로봇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로봇의 전형적인 이미지다. 비율도 다양하다. 인간이 탑승하는 전투로봇도 초대형 괴수와 싸우는 수백미터짜리부터 10m 안팎의 범블비까지 인간보다 큰 확대형 휴머노이드 로봇과 손바닥만큼 작은 축소형 휴머노이드 로봇이 있다.

기능으로 보면 로봇 팔은 프로그램도 되고,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며 인간의 활동을 돕거나 대체하니 로봇이 맞다. 또 로봇 팔 말고도, 로봇 청소기처럼 알아서 청소하고 먼지도 뽑아내니 그 또한 청소로봇 맞다. 여기서 잠깐! 그러면 알아서 판단하고 분류하고 과업을 수행하는 고성능 세탁기나 식기세척기, 공기청정기는 어떤가? 로봇이라 할 수 있냐 하면 뭔가 망설여진다. 긁적긁적. 필자에게 이들은 로봇이라기보다 자동화 기계제품이라 칭하는 게 편하다. 로봇 팔도 자동화 설비라 한다면 모두들 끄덕끄덕 수긍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동일하게 차체를 조립하고 용접하는 자동화 설비의 형태가 사람을 닮은 형상이라면 여러분은 무어라 부를까? AI세탁기나 청소기, 식기세척기가 사람 형상이라면? 제품이 아니라 로봇이라 부르는 게 훨씬 마음 편하다.

재미있는 결론이다. 로봇에게 형태와 기능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지점이 바로 인간형상의 유무에 있다는 점. 인간 형상 로봇이 얻어맞거나 넘어지는 것을 목격한 사람은 불쌍한 마음이 든다는 실험 결과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로봇의 형상이 인간과 흡사해지는 정도에 따라 느끼는 ‘불편한 골짜기 이론’도 휴머노이드 로봇에 연동되는 인간의 감정과 관심이 얼마나 높은가를 보여주는 지표다.

반면, 로봇 팔에 연민이나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 이야기는 필자도 여러분도 아마 들어본 적 없을 것이다. 그리고 로봇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속도로에서 화물차 후면에 붙은 눈동자 모양 스티커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치 사람의 눈 같은 인식을 줌으로써, 후방 운전자의 주의력을 끌어올린다는 연구 결과가 입증되었기 때문에 널리 쓰이고 있다. 사실 현재의 휴머노이드 로봇 대부분이 기능과 상관없이 눈 또는 눈 같은 그래픽 형상을 갖추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결국 로봇 디자인은 ‘휴머노이드로의 몰입’이다. 인지여부와 관계없다. 제한된 기능 구현인지, 다목적 기능 구현인지와도 상관없다. 인간을 닮을수록 그 로봇은 좋은 디자인이다. 크기조차 인간을 닮게 되어 있다. 인류의 등장과 함께 구축되어온 인프라가 휴먼 스케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처럼 움직이고 사람만한 로봇이라면 더없이 좋다. 내가 모는 차를 운전해주고, 내가 쓰는 청소기를 돌리고, 내가 쓰는 도구로 요리를 한다면 자율주행차, 로봇 청소기, 요리 로봇이 따로 필요 없는 세상이 된다. 로봇 디자인은 ‘불편한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때로는 로봇의 이미지로, 때로는 인간이나 동물의 이미지로 곧 우리와 대면할 것이다.

정연우 전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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