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낮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다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낮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리 치밀하지는 않았으리

  나의 칼 나의 피, 인동, 1987.

 시인은 80년대 한국 민족문학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는 80년대 사회변혁운동의 이념과 정신을 온몸으로 밀고 나간 "전사(戰士)시인"이며, 혁명적 목소리로 한국문단을 일깨운 "민족 시인"이다. 또한 반독재 투쟁에 앞장서 10년의 청춘을 영어(囹圄)의 몸으로 보내야만 했던 "혁명 시인"이다. 이 시는 군부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민중에 대한 잔혹하고 처참한 학살의 "광주 오월"을 "피의 강", "시체의 산"으로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증언한 옥중시이다. "광주를 지키는 작가" 문순태의 말을 되새겨 보자.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고통의 역사에 대한 망각이다. 광주의 5월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은 5월을 잊으라 잊으라 하고, 또 스스로 잊어 버리려고 한다. 해마다 광주의 5월은 역사 속에서 영원히 치유되지 못한 아픔으로 다가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사코 잊으려고만 한다. 이것이 슬프다." 조한용 우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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