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적이거나 실험적 대응으로
전통적 금융시스템 작동 흔들려
예외상황도 껴안을 새 대비책을

▲ 서병기 유니스트 교수·경영학

3월 들어 글로벌 대형 은행 4개가 문을 닫았다. 3월8일 미국의 최대 암호화폐 은행인 실버게이트 은행(Silvergate Bank)이 파산했고, 이틀 뒤인 3월10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큰 상업은행이자 미국에서 16번째로 규모가 큰 은행인 실리콘밸리 은행(Silicon Valley Bank)이 파산했다. 또 이틀 뒤인 3월12일에는 실버게이트 은행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던 암호화폐 전문은행인 시그니처 은행(Signature Bank)이 폐쇄를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3월19일에는 작년부터 파산 위기설에 시달리던 전 세계 17번째 규모이자 167년 전통의 크레딧스위스 은행(Credit Suisse Bank)이 가까스로 UBS(Union Bank of Switzerland)에 인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나씩 놓고 봐도 초대형으로 취급될 사건들이 3월 한 달 동안 4건이나 한꺼번에 발생한 것이다. 금융기관들은 모두가 어느 정도씩 연결되어 있고, 그로 인해 한 금융기관의 파산이 다른 금융기관의 위기로 쉽게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은 2008년 불어 닥쳤던 금융 위기를 통해 전 세계인이 경험한 바 있어, 4개의 은행이 연쇄적으로 파산하는 것이 그리 이상할 것도 없어 보인다. 실제로 이것이 끝이 아니라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First Republic Bank)이 다음 차례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고, 심지어 본 칼럼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도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치 은행(Deutsche Bank)이 위험하다는 새로운 뉴스가 나왔다.

다만, 이 은행들의 몰락이 꼭 연쇄적으로 발생했다고 만은 볼 수 없다. 암호화폐 은행으로 이름을 떨치던 실버게이트 은행과 시그니처 은행은 지난 11월 발생한 전 세계 3위권 암호화폐 거래소인 FTX의 파산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고, 실리콘밸리 은행은 유동성 관리에 실패했다고 이야기되고 있으며, 크레딧스위스 은행은 몇 번의 투자 실패로 위기를 자초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이 은행들의 몰락은 차례차례 연쇄적으로 발생했다기보다는 금융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어떤 공통적인 요인에 의해 다발적으로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그렇다면 어떤 공통적인 요인이 금융 전반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일까?

현재 진행 중인 은행들의 위기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금리인상’과 ‘뱅크런’이다. 코로나 사태의 끝자락에서 제기된 부작용 중 하나인 과도한 인플레이션, 이에 대한 처방으로 등장한 적극적인 금리인상은 장기 대출(혹은 국채 보유)과 단기 예금을 주요 포트폴리오로 가진 은행들에게 치명적인 부담으로 작용된다. 은행이 뭔가 안전하지 않다는 소문이 한 번 돌기 시작하면, 이는 즉각적으로 뱅크런으로 이어진다. 더욱이 실리콘밸리 은행은 폰뱅킹런으로 불릴 만큼 단 14시간 만에 파산했다고 한다. 더 이상 내 돈부터 지키겠다고 은행 앞에 먼저 줄을 설 필요도 없어진 세상인 것이다.

금융시스템은 금융시장이 안정적이고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잘 맞춰 설계되어야 한다.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는 것을 대비해 금리를 올린다거나, 고객의 집중적인 지급요구에 대비해 지급준비금을 일정 비율 이상 하도록 하는 등 중앙은행의 역할은 몇 백 년을 통해 인류가 정립해온 금융시스템 중 일부이다. 그러나 21세기에 이르러 이런 전통적인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들이 하나씩 등장하고 있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에 맞춰 예외적이거나 실험적인 대응은 여지없이 또 다른 예외적인 경우를 만들어 낸다. 문제는 이런 예외적인 경우의 등장 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외적인 팬데믹 사태를 맞아 예외적으로 돈을 풀어댔고, 예외적인 인플레이션이 왔으며, 예외적으로 빨리 금리를 올렸다.

전문가들은 3월 발생했던 동시 다발적인 은행들의 몰락에 미국, 유럽의 금융 당국들이 발 빠르게 잘 대응했다고 대체적으로 평가한다. 심각한 추가적인 뱅크런에 대비해 25만불까지 보장해주는 예금자 보호 한도를 무한대로 풀었고, (구제금융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너무 늦지 않게 UBS가 크레딧스위스 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이번 예외적인 조치들이 마지막 예외적인 조치일까? 지금 이대로의 금융시스템으로 현재의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까?

서병기 유니스트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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