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와 두동면을 거쳐 언양 쪽으로 가다보면 마을형태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듯하던 마을들이 띄엄띄엄 흩어지기 시작하고 국도를 따라 식당과 상가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한다. 또 교통이 편리하고 부지 확보가 쉬운 이점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밀려들어 오고 있다.

 두동·두서면과 언양읍이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위치한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반곡리(盤谷里)는 농촌적인 모습에 조금씩 도시적인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법정 반곡리에는 반곡상리와 반곡하리의 2개의 행정마을이 있다. 반곡상리는 언동과 옥동마을, 반곡하리에는 고하와 아랫진현마을로 이뤄져 있다.

 국도를 따라 성일주유소와 청수촌 오리불고기 매운탕, 솔밭집가든, 도림기사식당, 수퍼마켓, 반곡초등학교가 들어서 있고 한성피씨엠(주) , 농산물 저온저장 공장인 대원냉동, F·M·C산업(주), 고려기와, 목재공장인 (주)농림산업 등의 중소기업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도시적인 풍경을 보이는 언동마을의 모습이다.

 언동마을에는 농촌에서 찾아보기 힘든 1가구 2세대가 6~7가구나 된다. 1~2년 동안 전근을 오거나 언양에 근무지를 둔 직장인·자영업자들이 세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거리는 멀지 않으면서도 농촌적인 냄새를 찾아 들어온 사람들이다.

 권국술 반곡상리 이장은 "언동마을에는 세대수는 35호뿐이지만 가구수는 40가구를 넘어서고 있다"며 "언양과의 거리가 4㎞ 정도밖에 되지않아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최근 10년새 부쩍늘어 현재 언동마을 인구 절반가량은 직장이나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고 나머지가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반면 두서방면으로 1㎞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옥동이나 고속도로 아랫부분에 위치한 아랫진현마을은 오밀조밀하게 다닥다닥 붙어 정겨운 농촌마을의 특성을 그대로 나타낸다. 이런 정겨운 풍경에 빠져 울산과 인근 언양에 직장을 두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최근에 아랫진현마을에 집을 새로 지어 정착한 울산시교육청의 김성한(52)·한규정씨(43)는 "출·퇴근 거리가 조금 먼 것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고향에 살고 있는 듯한 심적 편안함이 너무나 좋다"며 "처음에는 마을 주민들과 다소 서먹했지만 2~3년이 지나고 부터는 한가족같은 동네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중구 병영파출소장을 지낸 뒤 퇴임한 김도헌씨도 최근에 정착했다.

 옥동마을은 예로부터 부자동네이면서 산을 등지고 들판을 내려다 보는 곳에 마을이 위치해 "참한 동네"로 이름이 나 있다. 정영순씨(72)는 "골짜기에 꽤 오붓한 들판을 갖고 있어 흉년에도 굶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집집마다 20~30마지기 이상의 논을 다 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옥동마을 옛이름은 지경마을이었다. 그러나 마을이름이 "죽을지경"의 지경과 발음과 같아 안좋은 일들이 자꾸 생겨나 이름을 바꿨다. 마을 뒷산에 있는 자수정을 캔 광산에서 이름을 따 옥동으로 부르게 됐다. 이후부터는 흉한 일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고하마을은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언동과 마주하고 있다. 50여가구에 이르러 반곡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L&S에너지(주) 등 덩치가 꽤 큰 중소기업들이 6곳이나 있다. 그러나 이중 3곳이 IMF를 기점으로 문을 닫고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반곡하리이장 권수경씨(48)는 "중소기업이 입주할려고 할 때 주민들이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장이 들어섰으나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이 반곡리 전체에 10곳에 이르지만 주민들은 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넉넉하지 못한 형편과 기술인력 필요를 이유로 주민들의 일자리를 만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하마을 주민들은 경부고속철도가 마을 아래를 관통하는 것 때문에 걱정이 많다. 고속도로의 소음에 시달려온 탓에 반응이 더욱 민감하다. 또 실제 거래가격보다 싼 값에 넘어간 임야와 전답이 못내 아쉽다.

 권이장은 "국도확장에 수용되는 부지보상비가 평당 10만원선에 이르는데도 고속철부지에 해당되는 보상비는 3만~4만원에 불과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마을 전체가 국도와 고속도로, 경부고속철로 갇히는 꼴이 돼 소음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곡리는 언양읍과의 거리 근접성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도 만만찮다. 식당 등지서 나오는 음식찌거기와 공장등지의 식당 부산물을 구하기 쉬운 점 때문에 개를 사육하는 곳이 6~7곳이나 된다. 가둬 둔채로 사육하면서 음씩찌거기를 끓여서 먹이는 탓에 악취가 심한 편이다.

 고하마을의 김영화씨(77)는 "소규모로 하던 개사육장들이 점차 규모가 늘어나고 사육장들이 뒤따라 들어오면서 마을 곳곳에서 개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여름만 되면 냄새가 나서 못살겠다"며 "여기다가 주민들이 반대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중소기업들이 자꾸만 밀고 들어와 마을형태가 갈수록 이상해져 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각종 기업이 들어서고 외지인들의 전·출입이 잦다보니 예전의 훈훈한 인정이 많이 손상됐다. 최근 언동으로 이주한 박춘만씨(74)는 "동네분위기가 갈수록 도시적인 냄새로 변해 가는 것 같아 몹시 아타깝다"고 말했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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