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거부하는 자유로움을 얻고 싶다면, 일탈을 꿈꾼다면 팔공산 북지장사로 가 볼 일이다. 절집의 거의 모든 것들이 규범과 질서에서 벗어나 있어 한없이 자유분방하다.

 법칙과 순서를 정하고 장엄한 불법을 따진다면 벌써 부처의 세계는 아니다. 우리의 일탈을 위한 여행에 가장 큰 공로자는 북지장사의 주지인 도봉 스님이시다. 그 분의 행동과 인상은 특별했다.

 북지장사는 팔공산 남쪽 자락에 숨은 조용한 절이다. 원시의 계곡과 울창한 숲길을 지나고서야 만날 수 있다. 새로운 나를 찾고 싶다면 차를 버리고 그 숲길을 걸어 올라야 한다. 욕심도 번뇌도 다 놓아버리고 탈속의 세계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부안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보성 대한다원 삼나무 숲길도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길이다. 그러나 북지장사로 향하는 소나무 숲길은 푸근하다. 흐르는 물소리에 취해 산길을 오르면 서늘한 그리움마저 든다.

 마침 부처님 오신날이라 길은 번잡하고 절 집은 소란하리라 여겼건만 산 속의 고요함 그대로다. 절 입구에 다다랐지만 기와 지붕 끝자락도 보이지 않는다. 돌계단을 오르니 작은 문이 보이고 모습을 드러낸다. "북지장사"란 현판 같은 건 없었다. 신라 고찰의 모습은 더욱 아니다. 조금은 피폐한 냄새가 났지만 절 집에 서린 기운만큼은 천년전의 영화를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엔 바람이나 머무는 산사에 연등이 걸리고 멀리서 불자들이 찾아 들어 두루 광명을 비추는 부처님 전에 촛불을 밝힌다.

 주지 스님은 신도들을 맞을 채비로 내내 분주하시다. 직접 하지 않을 일도 일일이 참견이시다. 천성이 부지런하신 분인 것 같다. 버려진 산사의 주지로 임명되어 25년 간 농사를 지으며 농부 스님으로 사신 분이다. 절의 살림이 가난하다 보니 농사를 지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였고 지금도 성실함이 몸에 익은 분이다.

 빳빳하게 풀먹인 승복을 입으시고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대중을 향해 설법을 할 준비로 긴장을 할 시간이지만 스님의 옷은 풀기 하나 없고 초라하기만 하다. 금방 논일을 하다 나온 것처럼 바지 한쪽도 걷었다. 치아도 거의 빠져 버린 노스님의 모습에서 절집이 아니라 이웃인양 편안하다. 꼿꼿한 뒷모습에서 팽팽함이 느껴진다.

 보물 제 805호로 지정된 북지장사의 대웅전은 파격이다. 조선시대 건축물의 미학을 보는 듯 하다. 정면 1칸, 측면 1칸 반의 특이한 구조에 문짝도 재미있다. 작은 집에 지나치게 큰 지붕을 얹었고 화려한 공포에 용 조각까지 설치하였다. 큰 지붕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추녀의 네 귀퉁이에 세운 가는 기둥인 활주도 재미있다. 그 활주를 받치고 있는 연화문이 선명한 받침은 어디에서 가져다 쓴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대웅전 처마 밑에 놓인 평생 비 맞을 염려가 없는 비석 하나가 있다. "지장사유공인불망비"다.

 대웅전을 한참 벗어나 요사채 뒤쪽에 나란히 선 3층 석탑 2기가 눈을 끈다. 아무런 장식이 없어 소박하고 단정하다. 옥개석의 층급 받침이 넷으로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통일 신라 후기, 쌍 탑 가람이 성행하던 시기에 세워진 탑이니 북지장사의 역사를 말해주는 문화재다. 탑 뒤편 너른 터가 원래 대웅전 자리다. 대웅전이 불타고 없어지자 지장전으로 쓰이던 건물이 지금의 대웅전이 된 것이다.

 땅에 엎딘 듯 낮은 요사채, 지붕까지 타고 올라간 담쟁이 넝쿨로 뒤덮인 조그마한 해우소도 절 집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북지장사는 팔공산 자락의 큰 가람들에 가려지고 눌리어 제대로 불사조차 해 본 적이 없는 절이다.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길이 생긴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수목원이나 된 듯 온갖 나무들이 불국토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벚나무와 팽나무가 연륜을 자랑하고 배나무와 목련이 버티고 있다. 여러 그루의 감나무가 요사채를 감싸안고 비파나무, 배롱나무가 삼성각 앞에 서 있다. 단풍나무, 굴참나무는 절 뒤편 언덕에 싱싱한 잎을 수없이 피워 낸다. 그 나무 사이로 구름 한 조각 스쳐 지나고 하늘 한 자락 보인다.

 대웅전 한쪽에 놓인 석조지장보살좌상(경북유형문화재 제15호)은 왼손에 보주를 들고 있는 모습이 온후하다. 중생을 다 제도하고 부처가 되려는 지장보살의 대원을 느낀다. 이 곳이 현판 하나 없어도 지장사임을 말해주는 작품이다.

 조선시대 건축가의 미학을 한껏 과시한 대웅전을 돌아 나오며 솟을빗살무늬 꽃 창살을 마음에 담았다. 세속의 법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북지장사 대웅전의 솟을빗살무늬처럼 꽃 한 송이 피워야겠다. 그리하여 영혼이 퇴화되어 가는 것을 막아야한다. 북지장사행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탈속이다. 배혜숙 수필가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