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EBS 도곡동 사옥 로비는 보통 건물과 별다를 것이 없지만 뒤쪽엔 뭔가 '특별한' 곳으로 향하는 두꺼운 문이 있다.

문을 밀어젖히면 아담한 무대를 둘러싼 150여 석의 의자가 눈에 들어온다. 2004년 4월1일 개관해 평일이면 어김없이 라이브 공연을 열어온 'EBS스페이스'다.

표값은? 없다. 그렇다면 음악 프로그램 세트장일까? 주말 오후 10시 'EBS 스페이스-공감'이라는 제목으로 방송이 되기는 하지만 세트장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객석엔 '공연장'을 찾아온 관객의 만족감이 넘친다.

좋은 공연을 찾아 매일 꼬박꼬박 무대에 올리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김준성(44) PD에겐 2년이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10년, 아니 그 이후를 내다보면서 시작한 일이었다.

"돈이 안되고 시청률이 안나와도 공연 실황을 훼손하지 않고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시청 '질'얘기를 안하더라도, 시청률 얘기만 하면 쪽팔리더라도요. 10년 이상 간다면 줄기가 생기고 아류가 생기면서 뮤지션들이 양성되겠죠."

'EBS스페이스-공감'을 맡기 전 14년간 음악, 연극, 무용 등 공연을 찾아다니며 실황을 녹화하는 프로그램을 맡아왔던 김 PD의 바람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스타들 뒤에 있는 뮤지션들이 앞으로 나왔으면 했고 방송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은 생각보다 순탄하게 진행됐다. 라이브 공연에 목말랐던 관객이 찾아왔고 공연 겸 방송에서 1시간 넘게 자신의 음악을 쏟아낼 수 있다는 취지에 뮤지션들이 호응했다.

"처음엔 공짜라서 많이 오는 줄 알았죠(웃음). 이제는 관객의 기대가 피부로 느껴져요. 객석과 무대가 가까워서 침 튀고 실수하고 기타 치다 틀려서 잠깐 '아이 씨…' 하는 것까지 다 보입니다. 서로 감정이입이 되는 건데 '공감'을 다른 말로 하면 '해피 투게더(Happy together)' 아니겠어요."

물론 초반엔 방송사에서 매일 공연을 열고 실황을 녹화해 방송한다는 프로젝트에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있었다. '왜 교육방송에서 음악 공연을 하느냐'며 낯설어하는 반응부터 '너무 마니아층만 바라보는 것 아니냐'는 반응까지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제는 '문화예술의 대중화, 대중문화의 고급화'라는 당초의 모토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소프라노 신영옥의 공연으로 문을 연 뒤 재즈와 클래식, 록, 뉴에이지를 비롯해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로 관객과 만났고 최근에는 한대수, 김창완, 김수철, 최이철 등이 '거장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섰다.

500회가 넘는 공연에 8만여 명이 찾아왔고 어느새 2년을 채워 부활, 서울전자음악단, 언니네 이발관 등이 2주간 기념공연을 꾸민다.

기반을 다지고 나니 공연의 '경영'에 대한 제안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색다른 모습으로 단장하거나 새로운 포맷을 도입할 계획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김 PD가 되묻는다.

"전국노래자랑이 왜 좋은지 아세요? 그냥 변하지 않고 전국노래자랑이라 좋아요.뮤지션들도 흔들리지 말고 계속 그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해요. 그냥 그대로 10년, 20년 가려고요" 연합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