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젖줄 역할을 하는 강과 들판, 든든한 울타리의 뒷산, 편리한 교통 4박자를 고루 갖춘 마을은 그리 흔치 않다.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사연리(泗淵里)는 이런 조건을 고루 갖춘 "잘 생긴 마을"로 손꼽힌다.

 사연리는 행정마을인 사일마을의 "사", 곡연마을의 "연"자를 따와 만든 이름이다.

 두동·두서·언양읍 일부를 어루만지며 흘러드는 대곡천과 가지산으로부터 시작한 언양천이 한몸을 이루는 "아부래비"에서 사일마을 앞으로 굽이치는 물의 형상이 태극(太極)의 모양새를 이루며 곡연마을도 왼쪽으로는 대곡천이 오른쪽으로부터 정면으로 언양천이 흘러드는 가운데 무학봉과 태봉산이 마주보며 마을을 품고 있다. 이런 주변 지세로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에 꼽히기도 한다.

 사연리로 접어들면 첫눈에 "이 마을은 시설채소를 많이 하는 곳이구나" 하는 오해를 하기 쉽다. 최근들어 너른 들판과 편리한 교통편 등으로 비닐하우스 시설채소 재배가 해마다 늘고 있기 때문이다. 깻잎이나 부추, 상추가 주종이다. 하지만 사연리 주민들이 직접 재배하는 하우스시설은 수십동 가운데 한곳 뿐이다. 고령화로 노동력이 부족한데다 시설비가 만만치 않아 사연리 주민들은 땅만 빌려준다. 대부분 논농사에 의존한다.

 사연리는 달성 서씨(徐氏), 곡연마을은 경주 김씨(金氏) 집성촌이다. 몇 안되는 타성받이를 제외하면 거의가 일가 친척이다. 초창기에는 촌수가 모두 가까웠으나 자손들이 늘면서 촌수가 꽤 많이 벌어졌다. 증조할아버지뻘인 사람과 경로당에서 같이 늙어가는 처지도 있다.

 마을 경로당은 늘 집안회의를 하는 것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겨울 한 철을 주민 대부분이 이곳에서 보낸다. 난방비를 아끼는 것도 있지만 홀로 지내는 외로움을 이곳에서는 잊고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94세나 된 박금순 할머니도 그들 중의 한명이다. 부축도 필요없을만큼 정정한 박금순할머니는 70~80대 노인들이 윷놀이를 하는 "재롱"을 정겹게 구경하다가 간식으로 시킨 자장면을 한그릇 거뜬히 먹고는 오후 5시가 조금 넘으면 퇴근하듯 집으로 돌아가고 다음날 다시 이곳을 찾는다.

 곡연마을회관의 노인회장인 김월경씨(80)는 할머니들을 쳐다보며 "우리 마을로 시집온 사람들은 팔자 고친거나 다름없다"며 "신라시대 왕족의 후손인 경주 김씨 가문에 들어온 것 자체가 영광아니겠냐" 고 우스갯소리를 해도 할머니들은 싫은 기색없이 웃어 넘긴다.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어내려오고 있는 집성촌의 전통이다. 주말에는 출가한 자녀들이 마을을 찾아와 마을회관에 라면이나 과일 등 내놓고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 가고 있다. 아예 부모를 모시고 이곳에 살면서 울산시내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10가구 가량이나 된다.

 김지원 곡연마을 이장은 "집성촌이다보니 길흉사때 하나가 돼 일을 처리하는 등의 장점도 있지만 집안어른에게 함부로 말을 하기 어려워 발전이 더딘 단점도 있다"며 "타성받이들이 1~2가구 이사를 왔다가도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떠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일마을에는 달성 서씨 종가가 목조건축의 고태미를 간직하고 서있다. 현재 종손인 서상연씨(62·경상일보 논설실장)가 살고 있다. 최근에 큰아들에게서 손자를 봄으로써 장손으로 10대를 이어온, 보기드문 종가다.

 240여년 전에 세워진 이 종가는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해 출입문을 따로 두고 산 모양새를 따라 일자형으로 돼 있다. 마당도 안마당과 바깥마당으로 구분해 남녀간 생활공간을 철저하게 분리해 놓았으며 대문 바깥에 구빙담이라는 연못이 만들어져 있다.

 사일마을은 도도한 강물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물걱정을 하는 곳이다. 지하수 사정이 좋지 않고 수량이 얼마되지 않아 지난 설에는 때아닌 물난리를 겪었다. 서백수 사일마을 이장은 "입식 부엌과 수세식 화장실로 바뀌면서 물 사용량이 크게 늘었다"며 "물가에서 물걱정하는 기이한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연리는 교통편이 개선되면서 점점 울산시내와 가까워 지고 있다. 울산~언양간 4차선 확장공사가 끝나면 울산시 남구 무거동까지 10분이면 닿을 수 있고 곡연마을~사연마을~망성리를 잇는 포장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어서 조만간 개통될 예정이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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