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檢丹)마을은 검단리의 중심으로 멀리 운암산을 두고 뒤로는 사장봉, 왼쪽으로 비스듬히 고야산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리 높지 않아 볕이 많은 드는 곳이다. 검단의 집 대다수가 사장봉과 북녁들이 만나는 곳에 자리잡아 멀리 대륙에서 시작된 세찬 바람을 자연스레 피하면서 동과 남이 확 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하늘에서 검단을 볼 때 생명의 근원지인 여성의 자궁과 같은 모습이다.

 이러한 곳은 일찍부터 사람이 찾기 마련이다. 청동기 유적으로는 처음으로 환호가 발견된 유적(사적 33호)과 지석묘군 등이 그 것을 증명하고 있다. 청동기시대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발소리가 끊이지 않은 곳인 셈이다. 이곳에서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은진송씨(恩津宋氏) 시부공파(時夫公派) 문중들이 가장 많다. 지난 2002년 면사무소 조사결과 검단리 전체에 30가구가 살고 있어 은진송씨 시부공파의 집성촌으로 보고 있다.

 검단마을에는 은진송씨와 함께 밀양박씨와 고령김씨 등도 많이 살고 있다.

 은진송씨들은 부산 동래에서 이곳으로 처음 정착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처음 터를 잡은 이는 은진송씨 1세인 대원(大原)의 20세인 기여공(機汝公) 추흥(樞興). 은진송씨의 시조는 천익(天益)으로 당나라 호부상서 주은(柱殷)의 후예인 백영(白英)의 둘째아들이다. 형 유익(惟翊)은 여산송씨, 동생 문익(文翊)은 서산송씨의 시조이다.

 기여공이 이곳 검단으로 온 시기는 공이 20대 후반인 1780년께로 보여지지만 동래에서 검단으로 이주한 연유에 대해서는 후손들도 다만 살기좋은 곳을 찾아 왔을 것이란 추측 뿐이다.

 기여공은 마을 입구의 양지바른 곳에서 후손들의 삶을 보살피고 있으며 후손들은 입향조의 묘소 앞에서 경선재(景先齋)를 세워 매년 10월 셋째주 일요일에 제를 올리고 있다. 입향조 묘 오른쪽에 선대인 후태(厚泰)의 설단을 지난 1958년에 세웠으며 98년 경선재를 중수했다.

 입향조의 6세손인 재성(在星·88)옹은 "입향조와 그의 아들인 치오(致五) 할아버지가 통정대부를 지내는 등 대대로 사인(士人)으로 지내왔다"며 "1908년 가구조사에서 이곳 송씨들 8할 이상이 사인으로 구분, 기록됐었다"고 설명했다.

 조선말 검단지역의 학교격인 단구서옥(丹邱書屋)도 은진송씨가 세웠다. 재성옹은 "입향조에게는 증손자가, 자신에게는 조부가 되는 병원(秉媛) 할아버지가 단구서옥을 세워 후손들과 아이들을 가르쳤다"며 부친 직환(悳煥)이 천자문을 적고 조부의 세필로 뜻을 적어놓은 고서를 내놓았다.

 검단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이다. 최근 조사에서 검단 전체 173가구 가운데 106가구가 농업, 22가구가 회사원, 32가구가 노동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요즘 보기드물게 정규교육기관을 다니지 않아 무학으로 학력이 구분된 사람이 31명이나 됐다. 대졸자는 30명에 한 명꼴인 15명에 불과했다. 인근 곡천 서중의 9명에 한 명꼴로 대학을 졸업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미취학이 4명중 1명으로 100명을 넘고 있어 다른 어느 마을보다 젊어 발전 가능성이 풍부한 곳이기도 하다.

 재성옹은 "집안에 이름을 알린 선비가 과거에는 많이 계셨지만 현대에는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인물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제 대학을 졸업했거나 다니고 있는 후손들이 많아 다음 세대에는 관계와 학계, 재계 등 여러분야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단의 은진송씨 문중으로는 송재홍 대령이 장군 진급을 앞두고 지난해 갑자기 숨져 마을 문중들을 아타깝게 했다. 또 검단의 초대 새마을 지도자를 지낸 고 송원호씨는 마을 발전의 유공자로 받들어 당시로는 보기 드물게 마을사람들이 공적비를 세워 후세에 남겼다. 또 고인이 된 새마을지도자 송경진씨도 기여공의 후손이다.

 현재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송근수씨도 같은 문중으로 재성옹의 조카뻘이다. 또 울산시내에서 산사춘 주류도매업을 하고 있는 송민록씨도 검단의 은진송씨로 26세손이다.

 서울 성수염주식회사 송인호 이사와 효성 울산공장 과장으로 있다 몇해전 서울 본사로 자리를 옮긴 송치호씨는 형제지간이며, 교직에 몸담아 부산에서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송정익씨도 검단출신이다. 서찬수기자 sgij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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