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소설가, 극작가, 언론인, 문화부 장관이라는 화려한 직함들과 언어의 천재라고도 불리운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이제는 자연인 이어령으로만 남겠다"며 35년간 몸담은 강단을 떠났다. 지난 7일 오후 이화여대 국제교육관에서는 600여명의 학생들과 문화계 인사들이 참석, 노석학의 마지막 강의를 들었다. ▲특히 김동리, 황순원, 조연현 등 우리문단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선배들을 비판하면서 문학평론을 시작한 이어령은 전후세대의 비평정신이 갖춰야 할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6.25전쟁이 끝나고 모든 것이 어수선하고 사회적으로 불안과 절망, 젊은이들의 방황을 그린 황순원의 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라는 장편이 발표 됐을때 이어령을 말했다. "나무들은 비록 비탈에 서 있지만 하늘을 향해 그 줄기를 힘차게 뻗어 나간다"고, 흠잡을데 없는 황순원의 작품을 두고 날카로운 비평을 가한 이어령은 그 시대 우리문단에서는 배덕아로 몰리기도 했다. ▲이날 강연제목은 "헴로크를 마시고 난 뒤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하나"였다. 헴로크는 소크라테스가 처형될때 마신 독약이다. 이는 유럽 산 독미나리로 진통제이자 독약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강단에 섰던 시기는 지적으로 자유로워야 할 대학마저 다른 학문 보다 상상력과 독창성에 있어 획일화 된 이데올로기나 정형화 된 학설이 지배적인 상황이었다며 창조적이고 다채로워야 할 문학강의실 마저 이같은 학설이 팽배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령은 바로 소크라테스의 종언에서 자신이 추구해 온 회색지대, 아이러니, 역설의 복합적 의미를 찾아낸다. 사약을 받은 학자는 우리 전통속에서 선비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양극화한 투쟁속에서 사람들이 민중문학을 운운 할 때도 집단이 아닌 한사람 인간의 완결성과 지존함을 이야기 해 왔다는 이어령, 지난 세기 한국의 지식사회를 대표한 천재, 우상의 파괴로 기성문단의 권위에 도전했던 배덕아, 그러면서도 재사일뿐 지사가 못된 채 당대의 정치.사회현실과 거리를 두어 왔다는 이어령, 그 해박한 지식과 현란한 문체는 아직 불꽃처럼 타고있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