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선영 격동초등학교 교사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당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G20 공식일정을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기자에게 질문권을 주었다. 얼마간의 정적 후 누군가 손을 들었다. “나는 사실 중국기자인데 아시아를 대표해서 질문하겠다”고 요청하였고 끝내 한국기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당시 그 영상은 대한민국 언론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그 후로 7년, 우리 사회는, 우리 교육은 얼마나 변화가 있었을까? 요즈음 대부분 아이들은 학원을 다니고, 선행학습을 한다. 누가 더 빨리 진도를 나가느냐? 한 마디로 속도전이다. 토론수업은 그와는 반대다. 답도 없는 논제를 가지고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머리를 싸맨다. 이것이 세상에서 내가 풀어야 할 유일한 문제인 양, 고민하고 또 고민해 본다. 1시간 토론을 준비하기 위해 아이들은 10시간이 훨씬 넘는 시간을 쏟아 붓는다.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빌려보기도 하고, 기사를 찾기도 하고, 자료의 출처를 찾아 번역기를 돌려 원문을 이용하기도 한다. 언론 또는 타인이 가공해 놓은 정보만을 이용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토론에서는 ‘얼마나 빠르게 멀리 가느냐’보다는 ‘얼마나 깊이 오래 머무느냐’가 더 중요하다.

강남교육지원청의 초등학생 독서토론대회를 준비하면서 함께 책을 읽고 논제를 중심으로 토론을 하면서 아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 “선생님 저도 말하고 싶어요” 아이들은 진정으로 토론 과정 그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 강남독서토론대회에 나갈 아이들을 선발할 당시만 해도 아이들이 발표하는 그 원고 속에 자신의 생각이 몇 %나 차지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자신이 준비해 온 원고를 읽는 것은 기막히게 잘하는데 예상치 못한 질문과 마주했을 때 자신의 논리가 무너지는 경우를 보았다. 하지만 토론을 준비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내적으로부터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논리에 허점을 찾아 파고드는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하면 좋을지 난감해하고, 상대가 던진 질문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과정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부딪혀 나가면서 끊임없이 자기 사고를 계속해 나갔다. 독서토론대회를 준비하는 우리 모두는 소크라테스가 대화법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도록 한 것과 마찬가지로 팀 전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논리의 허점을 찾아 질문을 던지고, 또 답을 구해보는 과정을 수없이 거쳐나갔다.

토론에서 더 이상 승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 과정 자체를 즐기고 성장해 나가는 스스로가 승자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토론은 웅변이 아니다. 또한 상대가 던지는 질문에, 앞선 누군가가 찾아놓은 답을 찾는 정보검색대회도 아니다. 한번 사고하는 것의 즐거움을 알아버린 아이들은 질문을 받는 것도 질문을 하는 것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독서토론대회를 마치고 학부모, 교사, 학생이 모인 자리에서 서로의 소감을 허심탄회하게 들어보는 자리가 있었다. 한 학생은 “이제 아버지가 왜? 라고 물어보시면 그냥이라고 답하지 않고 다양한 이유를 들어 조리있게 말할 수 있을 것같다”며 말하였다. 아이들은 변하고 달라졌다. 토론대회에 참석한 한 학부모는 “아이들이 구사하는 단어를 듣고 놀랐다”며 “자료의 출처를 밝히면서 논리적으로 말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현장에서 교사의 역할이 남았다. 교사는 가르침을 주는 사람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용을 ‘주는’ 사람이 아닌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돕는’ 사람으로 머물러야 한다. 아니, 굳이 끌어내 주지 않아도 좋다. 아이들과 생각의 흐름을 같이 하고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만으로도 족하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 후 7년, 우리 사회는, 우리 교육은 얼마나 변화가 있었을까?’ 강남독서토론 대회장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교육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바람과 앞으로 우리교육의 나아갈 방향성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토론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남들이 내놓은 답을 쫓아가기 급급한 사람이 아닌 새로운 답을 제시할 줄 아는 비젼을 가진 사람의 모습을. 세계적 협상 테이블에서 국익을 위해 싸울 수 있는 협상가의 모습을, 사람이 자원인 대한민국의 미래 모습을. 이제 첫 발을 떼기 시작한 강남교육지원청의 독서토론대회가 정착되고 더 깊이 뿌리내리기를 기원해 본다.

황선영 격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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