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인근 주민 손배소송
부산고법 1심 뒤집고 청구 기각
일반인 기준 年 피폭한도 하회
저선량 피해 입증 불가 이유

원자력 발전소 주변에 오래 살면 갑상샘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인정한 판결이 5년만에 뒤집혔다. 고리원전 인근 주민의 피폭선량이 연간 피폭선량한도에 못 미치며, 인과관계를 입증할 만한 국내외 연구자료가 없다는 게 판결의 요지다. 울주군 서생면 주민을 비롯해 원전 인근에 거주하다 갑상샘암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주민 600여명이 제기한 집단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부산고법 민사1부(김주호 부장판사)는 지난 14일 이진섭(52)씨 가족이 한수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항소심 선고기일을 열고 1심 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 측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또 피고 측 1심 소송비용 일부와 2심 소송비용 모두 원고가 부담하라고 명령했다.

재판의 쟁점은 원전 인근 거주와 갑상샘암의 연관성이다. 이씨 가족은 기장군 고리원전에서 7.6㎞가량 떨어진 지역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 이들은 원전 방사선 때문에 각각 직장암, 갑상샘암,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며 지난 2012년 한수원을 상대로 2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2014년 1심 재판부는 이 지역 주민들이 다른 곳보다 갑상샘암 발병률이 높은 점을 연관성으로 인정, 박씨에게 위자료 1500만원을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서울대 원자력영향·역학연구소가 실시한 역학조사 연구 결과를 보면, 고리원자력발전소 인근 주민의 연간 피폭선량은 0.00211~0.00760밀리시버트(m㏜)로 나타나 일반인에 대한 연간 피폭선량한도(1밀리시버트)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고 측이 주장하는 선형무역치모델(아무리 작은 선량의 방사선이라도 암 발생 확률을 높인다는 이론)에 대해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는 선형무역치모델을 뒷받침할 수 있는 생물학적, 역학적 증거가 없다고 밝히는 등 고리원전 인근 주민의 연간 피폭선량 수준과 갑상샘암 발병 여부에 관해 명확히 입증할 수 있는 조사·연구결과가 없다”고 말했다.

이진섭씨 가족이 즉각 상고하겠다고 밝혀 대법원의 최종 판단에 관심이 쏠린다.

한편 이번 판결은 전국 원전 인근에 거주하다가 갑상샘암에 걸린 주민 618명이 한수원을 상대로 공동으로 제기한 부산지법 동부지원 소송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울주군 서생면 주민 79명과 기장군 주민 112명은 고리원전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최창환기자 cchoi@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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