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면 너는 떠나고 없고 / 네가 오면 나는 떠난 후이니 / 우리는 언제 만날 수 있으랴 / 오가는 길 위에서 / 어쩌면 한 번 쯤 만날 법도 하다만 / 세월의 길은 / 가고 오는 길이 다른가 보다… ‘꽃무릇 피는 사연’ 중에서(김필규)
요즘 절마다 꽃무릇이 한창이다. 불타오르는 꽃무릇은 추석을 전후해 한달 정도 볼 수 있는데, 이 꽃을 보려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울산 인근인 청도 운문사 입구 소나무 숲속에는 8만여 송이의 꽃무릇이 만개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고창 선운사 입구에는 10만평의 꽃무릇 군락지가 있어 관광객들이 탄성을 지른다.
꽃무릇은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알뿌리가 마늘과 비슷하게 생겨 ‘돌처럼 단단한 마늘’이라는 뜻의 석산(石蒜)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 꽃은 절에 주로 피어 ‘중꽃’ 혹은 ‘중무릇’으로도 불렸다. 꽃무릇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어찌보면 스님과 꽃은 서로 맺어지기 어려운 것들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하는 스님에게 꽃무릇은 그저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할 운명 같은 것이었을까.
꽃무릇과 비슷한 꽃으로 상사화(相思花)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꽃무릇과 상사화를 같은 꽃으로 착각한다. 심지어 행정기관에서조차 팻말에 ‘꽃무릇(상사화)’ 또는 ‘상사화(꽃무릇)’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두 꽃은 엄연히 다른 꽃일 뿐 아니라 꽃이 피는 시기도 차이가 있다.
상사화는 초봄에 잎이 났다가 여름이면 모두 지고 무더위가 한창인 8월에 꽃대 하나만 남아 그 꽃대 끝에 꽃을 피워올린다. 반면 꽃무릇은 가을에 잎이 올라와 겨울과 봄을 견디고 초여름이면 잎이 떨어진다. 그리고나서 추석을 전후해 꽃대 끝에 불타오르는 것 같은 붉은 꽃이 핀다. 꽃무릇과 상사화는 잎이 다 지고난 뒤 꽃대가 올라와 그 위에 꽃을 피우고 그 꽃이 진 뒤에는 다시 잎이 올라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흔히 사람들은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꽃무릇과 상사화를 통칭 ‘상사화’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 두 식물은 엄연히 다른 식물이다.
잎 없이 피어도/ 외로워 하지 않고/ 흔적 없이 지는 걸/ 두려워 하지 않고/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 세상에 뿌리는/ 억장 무너지는 너의 사랑 이야기/ 발길 멈추고/ 듣다가/ 읽다가/ 내 심장도 노을로 타오른다… ‘꽃무릇’ 전문(김해진)
요즘 꽃무릇 군락지로 유명한 곳은 고창 선운사, 함양 상림,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 등이 있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