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 장기적 연구 가능 지원책 마련

집중된 연구 펼칠 학술 프로젝트 가능

구군별 축적된 자료공유 체계 이뤄져

▲ 홍영진 문화부장
구군별로 역사조명사업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사를 연구하는 일은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늘 있어왔지만 최근의 현상은 좀 다른 듯 하다. 옛 일을 새롭게 밝히는 학술적 접근을 벗어나 그와 관련된 스토리를 만들고 가치를 덧붙여서 울산을 대외에 알릴 문화관광콘텐츠로 활용하는 구체적 방안까지 내놓고 있다.

울산남구는 개운포성 일대를 국가사적(史蹟)으로 지정하고 처용암 등과 연계해 관광자원화 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이 움직임은 울산시 기념물인 개운포성지가 방치돼 있다는 민원 이후 남구가 일부 구간을 공원화했는데, 2018년부터는 기념물에서 국가사적으로 지정하려는 시민운동으로 번졌다. 지난달 ‘개운포성 국가사적지정을 위한 학술 심포지엄’은 국가문화재 지정 신청을 대비해 학계 전문가들 제언으로 진행됐다. 남구는 수년간의 활동내역과 자료를 집대성하고 국가사적지정 신청보고서를 작성해 울산시 및 문화재청에 접수시킨 뒤 개운포성 국가사적지정을 위한 범시민적 공감대 형성을 주도할 예정이다.

울산북구와 북구문화원은 최근 북구 매곡동 일원이 임란당시 최초의 창의(나라를 위해 의병을 일으킴) 장소라고 주장하는 단행본을 발간했다. 이미 30억원 이상의 국비와 시·구비가 투입된 만큼 ‘기박산성 의병 역사테마파크 조성사업’은 내년 말 완공을 목표로 일사천리 진행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전국 최초의 창의’라는 지역사 연구자들의 주장과 이 주장의 근거가 된 문헌과 제반 기록이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이 문제가 정통 역사학계의 학술적 논제로 좀더 많이 다뤄져야 할 것 같다. 임란사 및 의병사 연구자와의 논의와 교류로 지역논리라는 한계를 벗어나려는 시도는 계속돼야 한다.

임란사와 관련해서는 울산중구와 울산발전연구원도 일련의 사업을 모색한다. 10월 중구청컨벤션에서 열린 ‘도산성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 학술세미나는 도산성(학성공원·울산왜성) 일원을 조선과 왜의 전쟁터로만 인식하는 범주를 뛰어 넘었다. 도산성의 역사와 스토리텔링이야말로 ‘16세기 동북아 3국(한중일) 격전지’ ‘7년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역사현장’이라는 것이다. 유성룡이 남긴 <징비록>의 교훈이 집적된 곳이며, 나아가 한중일을 겨냥한 미래울산의 국제관광콘텐츠이기에, 가칭 ‘국립도산성박물관’도 짓자고 제안했다.

울주군과 울주문화원은 ‘우시산국’(于尸山國) 역사를 새로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달 ‘우시산국, 실존의 증명’ 주제의 학술회의에서 한 전문가는 ‘고대 울산의 재발견’을 도모하려면 이름만 전하는 수준인 ‘우시산’을 폭넓게 연구해 역사적 공백기라 할 수 있는 기원전후 울산·울주의 초기국가 시대를 조명해야 한다고 했다. 또다른 전문가는 30년 전 실시한 하대유적(웅촌면 일원이 우시산의 국읍으로 비정하는 유적) 발굴은 완료된 것이 아니라 중단된 것이며, 구릉의 하단부까지 모두 발굴해 울산 고대사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했다. 한 발제자는 우시산 역사문화촌 건립을 장기과제로 다뤘다.

이런 가운데 내년초 울산시는 ‘울산광역시 시사편찬위원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2000~2002년 운영되다 해산된 뒤 19년 만에 다시 재구성하는 것이다. 구군별로 이뤄지는 지역사 연구도 중요하지만 광역시 차원에서 지속적인 동기를 부여하고 정통 지역사 정립을 도모하는 시도가 함께 이뤄진다니 기대가 크다. 역사조명은 업무의 연속성이 중요한데 자칫 단체장의 치적이나 이벤트로 그칠 가능성도 없지 않아, 그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이루면서 체계적인 자료축적이나 정보공유의 다양화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욕심을 부리자면, 지역사 조명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면 특정 시기와 주제를 정해두고 장기적인 연구를 가능케하는 새로운 지원책이 생기면 더욱 좋겠다. 예를 들어 강원도처럼 지역학 차원에서 특정 지역사를 3개년 이상 집중 연구하도록 지원하는 학술 프로젝트가 울산에도 필요할 것 같다. 유구한 역사를 단편으로 다루다가, 아니한 만 못한 일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홍영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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