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가정의 달
거리두는 슬기로운 코로나 생활로
서로를 보듬는 행복한 5월 되기를

▲ 신형욱 사회부장

시인이자 극작가 T.S. 엘리엇이 대표작 ‘황무지’에서 말한 ‘가장 잔인한 달’ 4월이 끝무렵이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 형형색색의 꽃잔치가 시들해진 자리에 연초록의 새싹이 자리했다. 이틀만 있으면 노천명 시인이 말한 ‘계절의 여왕’ 5월이다. 눈부시게 찬란한 봄 햇살 만큼이나 설레는 5월의 향기가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요즘이다. 잠깐이라도 햇살 속 자연에 몸을 내맡겨야 될 것만 같다. 그런데 신종코로나 팬데믹이란 난공불락의 장막이 더욱 두텁게 길을 막는다.

울산의 4월은 분명 잔인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잔뜩 움츠렸다. 4월에만 역대 최고치인 600명 가까운 확진자가 발생했다. 줄곧 “방역수칙을 지켜달라”고만 하는 방역 당국의 존재감 없음이 안쓰러울 정도다.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시민들이 앞다퉈 임시 무료 선별검사소를 찾았고 또 방문하고 있다. 8일 동안 하루 평균 2000여명이 검사소를 찾고 있다. 당초 ‘선제적 조치’라고 할때는 언제인지 “(어차피 확진자와의 동선이 겹치는 등으로) 검사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방역당국의 영혼없는 대답엔 맥이 탁 풀린다.

최근 본보에 실린 사진 한장. 햇살 속 연초록색 눈부신 가로수 길을 따라 족히 200~300명은 훨씬 넘을 듯한 행렬이 줄지어서있다. 일행들은 마스크를 한 채 거리 이격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서 있다. 이 좋은 봄날에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과 함께 자연을 만끽해야 할 걸음들이 몽골텐트로 향하는 모습은 재난 영화 그 자체다. 신종코로나 검사를 위해 줄지어 서있거나 거리두기를 위해 띄엄띄엄 놓여진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은 이젠 일상이 됐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이를 두고 한 말인 듯하다.

모임이나 회식, 예식, 꽃놀이 등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일상의 부재가 장기화되면서 갑갑함을 넘어서 무력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탓인지 마스크도 하지 않은 채 산행이나 산책을 하는 이들도 자주 보인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마스크 대신 수건으로 입을 가리던 시늉도 잘 하지 않는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간절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코로나 속 두번째 맞이해야 하는 계절의 여왕 5월은 더욱 잔인할 듯하다. 더욱이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근로자의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 세계인의날, 부처님오신날 등 기념하고 함께해야 할 날들이 빼곡하다. 하지만 가족과 지인들을 보지 못하고 지내야 할 막막함에 5월이라서 더욱 마음이 무겁다. 혹여 아들, 딸이나 손주들이 오지 않을까봐 부작용 논란을 빚고 있는 백신 접종에 매달리는 늙으신 부모님들의 얘기는 속을 쓰리게 한다.

가벼워진 주머니도 깊은 한숨이다. 자영업자 등 상당수 서민들은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힘겨운 날들을 호소한다. 얇아진 월급봉투, 1년 이상 지속된 영업제한과 금지, 구직난 등 장기불황에 뒤이은 신종코로나는 쓰나미가 되어 서민들을 낭떠러지로 몰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1년에 한번 뿐인 뜻깊은 날들을 그냥 지나칠 수도 없다. 2년째 신종코로나로 만남이 드문드문한 상황이 아닌가. 신종코로나가 앞으로 언제까지 이어질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다른 때보다 더많이 챙겨야 할 듯한(챙겨주고 싶은)데 가뜩이나 졸라맨 허리띠가 끊어질까 걱정이 한가득이다.

채희남 시인은 시 ‘오월’에서 ‘…/마음같지 않은 인생살이에/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느껴지는 시간 때문에/ 제비 같은 오월/ 아들과 딸에 대한 서운한 기대감 속에/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으로/ 죄송하고 미안한 오월/…’이라고 읊었다.

올해 5월은 묵직한 무언가가 모두의 마음을 계속해 짓누를 듯하다. 하지만 시인의 말처럼 5월은 제비처럼 빨리 지나갈 것이다. 시끄러운 때에 조용히 오월 자체를 즐기면 어떨까. 신종코로나로 지친 서로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보자. “고생한다고, 잘 버티어 보자고”. 5월 모두가 슬기로운 코로나 생활로 서로를 보듬는 달이 되기를 빌어본다. 신형욱 사회부장 shin@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