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앗아간 소중한 학창생활
인성·감성교육까지 멈춰선 안돼
슬기롭게 헤쳐나갈 방안 찾아야

▲ 안현정 울산중앙초 교사

“농사철이 돌아왔네, 아 하라 먼데.” 우리나라 지도 위에 전라도 그렸더니, “양말에 빵구 났네요” 한다. 모심기 그린 것 보고는 “그때도 코로나가 유행했나 봐요.”

국악 시간에 있었던 일을 시로 들려줬더니, 자기네들이 한 말이면서도 웃겼나 보다. 한바탕 ‘까르르’ 배꼽 잡고 웃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보너스로 주말에 찍은 비 내린 산속 사진도 보여주었다. “귀신이 나올 것 같아요!” “으스스해요!” “앞이 안 보여요!” 하더니, 갑자기 “분홍안개 같아요!” 2모둠 제일 끝에 앉은 소영이의 말이 내 귓가에 내리꽂혔다. 그러고 보니, 비가 내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사이로 진분홍색 진달래꽃이 보였다. ‘우와 분홍안개라니!’ 대단한 상상력이었다.

올해는 19명의 우주가 나와 함께 했다. 이제 아이들도 적응했나 보다. 친구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도 짝 활동을 곧잘 했다. 똑같은 활동을 해도 나타나는 양상이 다른 19명의 우주들을 보며 교사인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마음이 숙연해진다. ‘아이들이 접촉하지 않고, 어떻게 놀 수 있을까?’, ‘마스크를 벗지 않고, 코로나 속에서도 연주할 수 있는 악기는 없을까?’ 고민해본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악기 리코더 운지법이 교과서에 나오지만, 마스크 벗고 교실 안에서 불 수가 없으니, 일단 운지법만 가르쳤다.

코로나가 아이들의 신나고 즐거운 것들만 쏙 빼앗아 간 것 같아 야속하기만 하다.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건 공부만 하러 오는 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 급기야 난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책상을 칸막이 삼아 미로를 만들었다. 코로나 감염 예방으로 생활 방역 강화 속에 묶여버린 우주들을 데리고 예전처럼 무언가 움직임이 있는 활동을 한다는 건 교사로서 매 순간 노란 안전모를 쓰고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학교 인근 확진자와 관련하여 조사 안내 문자가 있는 날에는 더욱더 그렇다.

조심조심 두 팀으로 나누고 양쪽에서 한 명씩 출발하여 가위바위보를 하였다. 이긴 사람이 상대의 아지트에 골인하는 놀이 한판을 벌였다. 한두 번 연습게임이 끝나자 규칙을 터득한 아이들은 갑자기 열기를 띠며, 우렁찬 함성으로 친구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응원 소리에 마스크 밖으로 비말이 번질 수 있으니, 응원하지 말라고 해야 하나 망설여졌다. ‘이 순간, 꼭 너희들의 동심을 내가 뺏어야만 하는 걸까!’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빨라지는 걸음, 다급한 마음에 미로 하나를 빼먹는 마음, 너희 모둠이 반칙이라는 둥 선생님은 우리 팀만 카운트를 빨리 세신다는 둥 아이들의 흥분된 마음을 보니 ‘그래, 이것이 너희들의 본연의 모습이었구나’ 싶었다.

이 모두 속에 아이들이 겪으며 길러야 하는 심성이 보물처럼 숨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속이라는 이유로 그것을 말로 다 설명하려고 했으니 어리석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느꼈니?’ 여운이 감돈다. 미로 하나를 빠뜨린 아이도, 그것을 목격한 아이도 표정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교실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우리가 일상으로 지나친 순간들이 코로나 속에서 새롭고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어린이날이 있는 5월인데, 코로나 속 교실이 언제쯤 예전처럼 축제 분위기를 마음껏 만들어 내도 괜찮을지 기약이 없다. 하지만, 난 또 코로나 속에서 19명의 우주들과 작은 음악회를 준비하고 싶다. ‘칼림바’라는 악기는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것 같다. 코로나 속 교실이지만 우리 반 아이들이 바른 인성과 감성을 키우는 기회를 상실하지 않고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갔으면 좋겠다. 안현정 울산중앙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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